「슬럼, 지구를 뒤덮다」를 읽고...

우리나라에 슬럼(slum)이 있나요?

슬럼이라 하면 미국의 우범지역으로 하렘가와 브롱크스가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슬럼, 과연 한국에도 있는가?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소득 수준에 따른 빈부격차가 강남․북을 넘어서 세분화되어 가는 지금, 최저 생계 유지비만도 못한 돈으로 생활하면서 절대 빈곤에 시달리는 이들이 사는 곳, 7~80년대 개발이 한창 진행되면서 지금은 눈에 안 보이는 곳으로 밀려 나고 있는 그 곳이 바로 우리나라의 슬럼이다. 익숙한 말로는 판자촌, 철거촌, 달동네 등등의 표현을 사용할 수 있다.

국가가 도시를 먹고 살며, 도시는 빈민을 먹고 산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내가 산다.

이 책은 저자가 ’03년에 [뉴레프트리뷰]에 실었던 글인 [슬럼의 행성]을 많은 데이터와 역사적 사건으로 보충한 책으로서 국가가 의도적으로 빈민을 만들어내며 국가적인 수준의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과정을 보여주며, 슬럼에 살고 있는 빈민들의 환경이 얼마나 전근대적인 수준인지를 폭로한다. 놀라운 점은 개발도상국에서 벌어지는 세련된, 하지만 그보다 난폭할 수 없는 - 심지어 전쟁도 - 슬럼의 파괴와 재형성을 적나라하게 알려주는 과정이다. 제 3 세계 국가의 절대빈곤 수준은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겠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세계 곳곳의 국가공인전쟁은 독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안겨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지금 누리고 있는 ‘문명’이라는 것이 누구의 뼈와 살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남의 일이라 회피하지 말고 우리의 현실을 보자.

한국도 개발이라는 이름아래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을 부수고, 그들을 내쫓고, 아파트를 짓는다. 많은 사람들은 강남을 보면서 부의 정점이라 이야기하며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하지만 그 자리에 누가 살다 어디로 갔는지, 어떻게 사는지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

필요한 인력을 가장 값 싸게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내몬 빈민들을 공사장에 고용하는 아이러니….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고 남을 위한 건물을 짓는 현장에서 힘겨운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들의 뼈와 살로 만들어진 문명….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상계동 올림픽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이웃들의 이야기였으며 머지않아 우리가 겪을지도 모르는 이야기이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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