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현안으로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한 노동자가 또 목숨을 끊었다. 45m 높이의 대형 크레인에서 129일째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이 지난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회사측의 불성실한 임금·단체협상과 무리한 손해보상 소송, 가압류가 죽음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1월 두산중공업 배달호씨의 분신자살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맞는 노동자의 죽음이다. 무엇이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모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 노동문제의 한 가운데에는 자본측의 무자비한 손해배상 소송과 재산 가압류가 자리 잡고 있다. 사용자쪽은 이들 조처가 자신들의 유일한 방어수단인 만큼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 노동법이 생긴 이유는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자본에 대한 노동자들의 입장은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쪽이 폭압적인 손해배상 소송과 가압류가 자신들의 유일한 방어수단이라고 말하는 것은 수긍할 수 없다. 한진중공업은 상반기 부산지역 매출이 상위 1∼2위를 할 만큼 경영상태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22년간 회사를 위해 일한 김주익 위원장의 월급 명세서에는 13만 5080원에 불과한 실수령액이 찍혀 있었다. 이럴진대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운운하며 노조가 국가경제를 망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정부는 불거지는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새로운 노사관계법을 마련했다. 사용자측 입장과 노동자측 입장을 모두 강화해서 양자간의 타협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원초적으로 힘이 약한 노동자측에 이러한 접근 방식은 옳지 않다. 정부는 무엇이 공정한가를 한번 더 고려해 적절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언론은 한국 노동문제의 실상을 정확히 보도해야 한다. 단순 수치로 국가 생산력에 대해서 논하려거든,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이 2628시간으로, OECD 가입 국가 중 최장노동시간을 자랑한다는 것도 밝혀야 할 것이다.

김주익 위원장은 “노동자가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나라, 그런데도 자본가들과 썩어빠진 정치꾼들은 강성노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고 아우성이다”라며 현실을 고발했다. 1970년 11월 13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며 전태일 열사가 분신자결했다. 그 후 30여년이 흘렀지만 노동자들의 삶의 현실은 그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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