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호]

세상에는 우리를 괴롭히는 많은 귀찮음이 있다. 레포트 쓰기 싫은 귀찮음, 청소하기 싫은 귀찮음, 학교 가기 싫은 귀찮음 등등... 기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라 때론 까칠한 학우들을 마주하기 싫은 귀찮음, 왠지 글빨(?)이 안 선다고 생각될 때 기사를 쓰기 싫은 귀찮음에 시달린다. 그리고는 어리석은 후회를 반복한다. "제때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나는 왜 귀찮다고 안 했을까. 그렇다면 지금 이렇게 마감에 허덕이진 않을 텐데."

최근 일부 학우들도 비슷한 경험을 겪고 있는 듯하다. 지난 2년 간, 가을에는 총학생회 선거가 무산되고, 겨울에는 등록금이 인상되는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 봄을 맞이하는 지금, 장안벌에는 학우들의 후회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지난 총학생회 선거철, '투표에 대한 귀찮음'을 후회하며 '총학생회가 있었더라면…'하는 학우들의 아쉬움과 자성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물론 대놓고 투표가 귀찮다고 답하는 학우는 흔치 않다. 다만 조금 발칙하게 지적하자면, '귀찮음'을 곱게 포장해서 '합리적인 투표권 포기'를 주장하는 학우들은 있다.

작년 11월 선거의 경험에서 보면 이런 학우들은 대체로 몇 가지의 논리를 펼친다. “선거 때 마다 빚어지는 마찰과 잡음에 실망해 일부러 투표하지 않았다”거나 “선거를 하는 줄 몰랐다”, “선거를 하는 줄은 알았지만 너무 바빴거나 관심이 없다”가 그것이다.

총학생회 선거는 한 해 동안 대학이 굴러가는 데 있어 대학본부와 협의할 우리의 대표를 뽑는 일이다. 생각해보자. 오늘은 복싱 챔피언 결정전이 있는 날이다. 넓은 링 위에 상대국은 강철주먹으로 무장한 선수가 나오는데 우리는 하다못해 비실비실한 대표선수조차 없다. 결정적인 승부다. 그러나 싸움이 성사가 안 된다.

최선이 없다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총학생회 자리를 공석으로 비워두는 것 보다는 현명했다고 판단한다. 만약 차선조차 없을 땐 기권표라도 던져 투표권을 행사한 나머지 48~9%의 의사를 존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제일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은 ‘바빠서 투표를 못했다’, ‘관심이 없다’는 반응이다. 뒤집어 말하면 ‘바쁘거나 별 관심이 없으면 내 권리도 버릴 수 있다’는 일부 학우들의 사고방식이다. 투표가 다른 일들에 치여 귀찮음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결국 귀찮으니까 투표를 안 한 것 아니냐”는, 조금은 과장된 비판에 자존심이 상했다면 이제는 귀찮음을 떨치고 더 솔직해지는 길을 권한다. 이번에는 단선이라서 특별히 반대 칸에도 도장을 찍을 수 있다. '정말 난 모르겠다' 싶으면 당당하게 기권해도 좋다. 잊지 마시라. 투표조차 하지 않으면서 총학생회를 평가하고, 학내문제 개선을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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