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제자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독후감같은 글을 써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민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떤 글을 써줄까 하고 말입니다. 모든 책은 다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어서 쉽게 결정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잠시 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책을 꺼내 들고 읽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입니다. 항상 답이 안 보이거나, 방황의 끝이 요원할 때, 그냥 사는 것이 힘들 때면 은근슬쩍 손이 가는 그런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언제나 ‘아냐! 내가 옳아! 세상 모든 것이 다 틀렸어! 하지만 난 옳아! 약한 건 니들이야! 강한 건 나란 말이야!’ 하는 식의 허무주의적인 발상이 내면 깊숙이 숨겨져 있던 나의 의지를 일깨워줍니다.

대학생 시절 일감호를 바라보며 수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 응답 없는 짝사랑으로 깊은 상처도 받고, 닳아버린 소매 자락에서 가난의 흔적을 확인하기고 했습니다. ‘뭘해먹고 살아야 할까’ 하는 막연한 현실적 고민은 숨통마저 조여 주었습니다. 얼어붙은 일감호의 두꺼운 얼음 위에는 거짓말처럼 눈이 곱게 덮여 있었지요. 세상은 너무 가식적으로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그 밑에는 따뜻한 물이 흐르고 있음을 깨달았지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많은 가치를 두지 말자. 남들이 하는 말에 너무 귀 기울이지 말자. 내가 잘하는 것을 찾으면 되는 거야.’ 하면서 긴 밤 지새운 나는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미네르바의 올빼미처럼 위로의 마음으로 청심대를 떠났지요.

초인. 모든 것을 극복해낸 사람. 극복은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 아이로 이어지는 비유와 함께 영원회귀하는 과정 속에서 좌절과 도전의 연속으로 이루어지지만, 더 이상 극복해낼 것이 없는 그런 사람, 세상을 향해 나 자신을 인정하고 증명해주는 그런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사람. 니체가 세기 전환기를 살아가면서 그토록 강한 열망으로 인류에게 전해주고 싶어 했던 메시지가 바로 이 초인이었습니다. 정말 도달하기 힘든 지고의 존재이지만 그 초인은 다시 희망이 되어 삶을 되돌아보게 해줍니다. 혼란한 주변을 정리해주고,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주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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