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기억해주세요.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

영화 <화려한 휴가>에서 신애(이요원 분)가 계엄군이 쳐들어오기 전 거리에서 가두방송을 하며 외친 말이다. 신애가 외쳤던 것처럼 그들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질까?

아무것도 모르던 1학년 수습기자 시절, 선배들과 함께 찾은 국립 5ㆍ18묘지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박경순 관리소장님을 처음 뵈었다. 이 분은 5ㆍ18 광주 민주화항쟁(아래 5ㆍ18) 당시 도청에서 계엄군에 맞서 광주를 지키다 돌아가신 고 박병규 열사의 동생이다. 광주를 방문한 날 잠깐 뵈었을 뿐이지만, 열정이 넘치는 분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 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는 5ㆍ18 유가족들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들을 위하며 살아왔다. 오빠의 죽음을 계기로 5ㆍ18을 가슴에 새기고 잊지 않으며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살아온 것이다.

그렇게 그 분을 만나고 서울로 돌아온 후 2년이 지나 필자는 3학년이 됐고 다시 5월 18일이 돌아왔다. 광주를 다시 찾은 필자는 5ㆍ18 기념행사에 참가한 뒤 광주에 있는 고향집에 들렀다. 오랜만에 돌아온 집에서 편히 쉬다가 잠들기 전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하나 보게 됐다. 낯이 익은 얼굴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을 보고 유심히 쳐다봤다. 기억을 더듬다 그 분이 예전에 뵌 박경순 관리소장님이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5월의 누이’라 불린 그녀는 간암으로 숨을 거뒀지만, 그녀가 살아생전 이룬 일들 덕에 5ㆍ18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계속 남을 것이라 생각한다.

필자 역시 광주에서 태어나 20년을 그곳에서 살아왔지만 5ㆍ18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필자에게 5ㆍ18은 그저 ‘내가 살고 있는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 정도로 여겨졌었다. 그렇지만 고 박경순 관리소장님의 삶에 대한 다큐를 보고 나선 5ㆍ18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가진, 꼭 기억해야만 하는 역사가 됐다. 왜냐하면 기억하지 못하는 폭력의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폭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 첫째 가해자, 둘째 피해자, 셋째 방관자, 그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자. 정동영 전 대선후보가 지난해 7월 30일, 신촌의 영화관에서 <화려한 휴가>를 본 후 한 말이 생각났다. “‘우리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했던 신애의 말을 잊고 있었던 것을 반성합니다. 그저 역사려니 생각했던 것을 반성합니다.”

5ㆍ18이 그저 역사의 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5ㆍ18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고 말하고 싶다. 또 다른 폭력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키고자 했던 그들의 노력과 희생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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