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7호 광장

건국 가족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행정대학원 법무학과 3차 학기에 있는 서상원이라고 합니다.
일감호를 거닐며 저의 미래를 꿈꾸고, 새천년관에서 산학협동관까지의 강의실을 오가며 학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학창시절을 보내고 있답니다.
저는 학부시절 삼청동 극동문제연구소 주관 한국사회의 이해라는 주제강연으로 당시 한완상(서울대 사회학과), 손학규(서강대 정외과), 조창현(한양대 행정학과), 김학준(단국대 정외과) 교수님들의 주제 발표로, 일찍이 한국사회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현재 IT,금융, 교육 분야에 직접 현장 경험을 하면서 최근 변화되는 아닌 급변되는 한국사회의 여러 면모를 우리 건국 가족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자고 펜을 들게 되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4가지 정도로 요약하여 현재 우리에게 당면한 현실 상황들을 제가 그간 생활 속에서 느끼고 또 직접 피부에 와 닿는 진솔한 얘기로 시작할까 합니다.

우선 가장 당면한 현실에서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문제는 경제 생활 중심의 가족변화입니다.
한국사회는 제7공화국 문민정부 시절 대중고도 소비시대의 여파로 일명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이라고들 하죠. IMF외환위기를 지나 현재까지 남녀노소가 모두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경제생활에 박차를 가하는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세계적인 경제흐름을 감안하더라도 현실이 너무 메말라 가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제는 고교 사회문화 교과서에도 나타나듯이 가족해체라는 차마 공동체의 붕괴를 예견할 만큼의 상황이 도래됨에  현재 사회의 한 일원으로 참 맘이 아픈 현실임을 여러 가족 분들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서로 실리적인 가족 문화 형성이 또 다른 오해와 사회 기존 병리 현상과 맞물려 인간파괴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런 예견도 해 볼 수 있습니다. 인간성 말살의 시대라는 대명제 아래 어느 카드회사의 카피라이터처럼 우리 사랑도 할부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호주제가 폐지되고, 남녀의 성적역할까지도 유니섹스의 물결로 치닫고 있는 현실에 우리 건국 가족 분들의 활기와 미래지향적 사고가 그 어느 시대보다 요청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이 듭니다. 자! 캠퍼스의 활력처럼 우리 교정의 소나무가 사철 푸르듯이 언제나 자신을 가지는 그런 건국인의 당당함을 가졌으면 하고 감히 기원 드립니다.

여기서 기존과 새로운 것의 조화를 바라는 심정에서 외래문화 수용에서 오는 세대 간 가치관의 혼란을 언급코자 합니다.
일찍이 미군정 시절의 커미션 문화가 변색되어 잘못 수용되었다는 누군가의 얘기대로 외래문화의 범람 속에 이제 같은 20~30대에서도 세대 간 격차가 벌어지는 참으로 시대 풍속의 세상읽기가 그 시대보다 혼란하고 예민한 사회상황입니다. 서양의 문화 그 뿌리가 어디에 있으며, 왜 그네들이 커피를 마시는지는 생각의 근원조차 없으면서 왜곡된 청바지 문화가 우리 사회 도처에 있고, 또 그런 문화의 이해부재로 세대 간 갈등이 그 어느 시대보다 크다고 감히 보며 최근 대학가의 베스트셀러인 88만원의 세대에서 보듯이 이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실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시대적 요청이 이미 우리 안방문화에까지 녹아 들어오고 있음을 여러 가족 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온고지신의 정신이 새삼 생각나는, 우리 선현들의 지혜의 참뜻이 현재의 우리에게 뭘 말해 주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감히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가족문화와 외래문화에서의 마찰이 현재의 경제 상황과는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까 생각해봅시다. 무한경쟁의 테두리 안의 한계성장 현실과 나아갈 방향으로 말입니다.
이미 지구촌은 무한경쟁에 돌입한 바, 남미 아마존으로부터 생태의 파괴, 이상기온기후, 이미 성장의 한계는 각 산업분야별로 속출되고, 성장과 분배의 갑론을박의 한판 승부가 요청되는 시대적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날로 거세지는 복지의 요구와 개개인의 개인주의적 사고와 현실추구 문화가 적절히 합쳐져 어떤 타계책이 우리에게 요구되는지는 주지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제 한계라는 단어가 서슴지 않고 나오는 그런 상황이 우리의 목전에 와 있다고 한다면 과연 우리 건국 가족 여러분들은 어떻게 문제 해결의 과정을 밟으시겠는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네 삶은 연속되는 문제 해결의 과장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지만, 해결은 세상 속에서 이루어지며 또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병오어의 비유처럼 나눔의 감동이 해법일까요? 아니면 전지전능한(?) 지도자 출현일까요? 우리 각자의 자기성찰일까요? 함께 고민하고 또 나누어 봅시다.
 
마지막으로 제가 공부하고 있는 법의 역할이 여기가지 미치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서 사회를 객관화하는 법의 역할과 미래를 향한 기대로 글을 마칠까 합니다.
이러한 혼란과 각박함 속에서 사회현상을 객관화 한다고 볼 수 있는 법의 역할이야말로 시대적 요청이 아닐까 싶지만, 여기서 인간적인 이해와 남아있는 현실은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 같으며, 이 역시 누구를 위한 제도적 장치인가를 우리 모두의 숙제로 간질하고 풀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대학원에서 법을 공부하고 있다지만, 여기가지 속 시원히 충족할 수 없음은 인간적인 나약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더욱 노력하여 다음에는 세련된 주제로 얘기 나눌 수 있도록 기대해 봅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뜨거운 여름날 그렇지 않아도 덥고 여러가지로 머리가 아픈데, 왜 이런 글이 눈에 보이냐고 저를 나무라실 것 같아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건국 가족 분들께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보는 것이 도리이다 싶어 용기 내어 몇 자 적었습니다. 
우리 입학의 환희처럼 그렇게 늘 처음처럼 생활해 나가면 합니다. 늘 열려있는 사람이 그리운 시절이라는 생각이 펜을 놓으면서 불현듯 스쳐 지나갑니다.
감사드립니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