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학본부에서는 이른바 ‘소수학과’를 통폐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장래성이 없고 사회적 수요도 별로 없는 소수 학과’를 더는 유지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학교의 방침이 과연 옳은 것일까? 이 방침엔 어떤 문제점들이 도사리고 있는 걸까?

하나의 학과가 사라졌을 때, 가장 큰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바로 그 학과의 학우다. 통폐합이 거론되고 있는 EU문화정보학과와 히브리ㆍ중동학과의 폐과는 군대나 등록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휴학을 하고 있는 학우에게 마른 하늘의 날벼락만큼이나 충격적인 소식이다. 이들은 복학 시에 갑자기 폐과 소식을 접하게 된다. 히브리ㆍ중동학과 한종철 학생회장은 “학과의 남자들이 다 군대를 간 상황인데, 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이다”라며 사태의 심각함을 전했다.

학과가 사라진 이후의 대책도 미비하다. 8월 14일에 발송된 서신이 언급한 대책은 ‘자유로운 전과를 보장하고, 남은 학생들을 위해 전공강의를 개설하겠다’라는 원론적인 수준이다. 금호경(문과대ㆍ커뮤니케이션) 학우는 “폐지가 확정된 상태에서 남아 있는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지원을 해주겠느냐?”며 “어불성설이다”라고 단언했다. 이처럼 미흡한 대책은, 없어진 학과에 남은 학우들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길 가능성이 크다.

설렁 전과를 하게 되더라도, 학우들의 정신적 공황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전공이 사라지면서 자신이 원하던 공부를 하지 못하고, 낯선 학과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전혀 다른 과목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ㆍ중동학과 한종철 학생회장은 “나를 비롯한 3학년 이상의 학생은 몰라도, 후배들이 자기의 뿌리를 잃고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새로 입학한 1학년 학우들의 선택폭이 줄어드는 것도 문제다. EU문화정보학과와 히브리ㆍ중동학과가 폐지되면, 문화정보학부에는 커뮤니케이션학과만 남게 된다. 따라서 EU문화정보학과와 히브리ㆍ중동학과에 들어가고 싶어서 문화정보학부에 들어온 학우들은 이 두 학과를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최창모(문과대ㆍ히브리중동) 교수는 “대학은 다양한 학문이 하나로 묶어진 것이며, 그것이 대학의 정신이다”면서, “이번 구조조정은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권을 빼앗으면서 대학의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학과의 운명을 결정하는 과정에선, 무엇보다 학우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학사 구조조정 논의 과정에서 학우들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 학사구조조정 논의는 학우들이 많이 없는 방학 동안 진행되었다. 학과가 폐지될 수 있다는 내용의 서신은 해당 학과의 교수와 학장도 모르는 사이에 발송됐다. 그나마 이 서신을 받지 못한 학우들도 많다. 대학본부가 의사 결정을 비공개적으로 또 졸속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EU문화정보학과와 히브리ㆍ중동학과가 지금 통폐합이 거론될 지경이 된 것에는 학교 측의 잘못도 엄연히 존재한다. 지금 두 학과의 교수들은 각각 2명씩이다. 그동안의 교수충원 요청은 매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장영백(문과대ㆍ중문) 교수는 “그동안 두 학과는 변변한 지원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다”며 “어느 정도 지원이 된 상태에서 폐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야 하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졸속으로 또 비민주적으로, 특정 학과를 없애려고 하기보다는, 쓰러져 가는 학과들을 어떻게 하면 살릴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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