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맑았으나 가끔씩 구름이 보인 9월 21일 일요일. 나는 기륭전자에 가기 위해 가산디지털단지 지하철역에 내렸다. 역에서 나가자마자 본 것은 입구에 삐죽삐죽 서 있는 오피스텔과 아파트 공장들이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 타워,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이 세운 빌딩… ‘디지털단지’라는 말에 왠지 맞는 이미지였다. 이런 곳에서, 한 중소기업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1124일(취재하러 간 날을 기준으로) 동안 회사에 맞서 싸우고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중간에 길을 잃기도 하고, 더운 날씨에 지친 나는 결국 갔던 길을 되돌아가 육교를 건너 제일모직 건물로 갔다. 그 곳 근처에서 ‘기륭전자 비정규직 부당 해고 반대하다’라는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그 곳이 기륭전자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기륭전자에서 느닷없이 쫓겨난 후 지금까지도 고집스레 싸워 온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219-6번지에 위치한 기륭전자는 2004년에 매출 1171억 원, 220억 원 흑자를 자랑하던 ‘우량 기업’이었다. 그러나 그 실적 뒤에는 밑도 끝도 없는 착취가 벌어지고 있었다. 2005년 생산직 직원 300여 명 중 비정규직(계약직+파견직) 노동자들은 290여명이었다. 이들은 법정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64만 1850원의 임금을 받으며, 한 달에 70~100시간의 잔업에 시달렸다. 밉게 보였다 하면 그날 부로 문자메시지로 해고당했다.
악조건과 ‘황당할 수준의’ 착취에 시달리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택한 것은 노동조합이었다. 모두가 뭉쳐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합체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리고 받은 것은, 노동조합 가입을 이유로 해고했다는 내용의 회사에서 날아온 문자메시지와 굳게 닫힌 회사 문이다.
그 날 이후로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줄곧 투쟁을 계속해 왔다. 어떤 때는 구로역 철탑에 직접 올라가 시위를 하기도 했고, 각 정당들에 ‘읍소’를 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이 택한 것은 단식투쟁. 김소연 노조 분회장은 94일 간 단식투쟁을 하다 결국 병원에 실려 갔다.

기륭전자 본사 정문 앞에 있는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 컨테이너 박스 하나와 텐트 2개가 있다. 그 누가 보아도 ‘참 초라하기 그지없다’라는 소리가 나올 만하다. 그만큼 현장은 초라했다. 그 모습은 1124일 동안 이들이 얼마나 힘들게 회사와 싸워 왔는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초라해 보이는 텐트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그 안의 사람들이었다.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대여섯 명 정도였다. 다들 기나긴 투쟁과 오랜 단식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 단식투쟁에 같이 참가한 20대 대학생 한 명은 그때까지도 자고 있었다. 진보신당에서 왔다는, 지금도 이번 기륭전자 투쟁을 이끌어나간다는 사람 한 명은 내내 가래를 뱉어내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람들은 아직 웃음을 잃지 않았다. 텐트 속에서 같이 투쟁하는 사람들은 서로 나이도 다르고 경력도 다른 이들이다. 직장인, 진보신당 당원 겸 전직 트럭 기사, 대학생들은 이젠 서로 농담도 건네고 웃기도 한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해 온 이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기륭전자 노동자들에게 ‘파이팅’을 외쳐 주고 있다. 텐트, 컨테이너 박스, 회사 정문에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사측의 부당 해고를 비판하고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보내는 글을 적었다. 특히, 촛불시위 이후 많은 네티즌들이 기륭전자 문제에 큰 관심과 격려를 보내고 있다. 노동자들과 더불어 자택에서 동조 단식에 참여하는 네티즌들도 있고, 직접 찾아온 네티즌도 있다. 한 인터넷 카페에서는 ‘기륭전자 노동자들 힘내세요!’라는 내용의 직조물을 보내 왔다. 그것은 지금 텐트에 걸려 있다.
그동안에도 회사 문은 닫혀 있다. 살짝 들여다 본 회사의 내부에는 사람 하나 없다. 문이 하나 열려는 있으나 아무도 들어가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들어가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중국집 배달원이다. 아마, 회사 안의 사람들이 점심 식사 삼아 자장면이나 짬뽕, 탕수육을 시킨 모양이다. 과연 배달을 시킨 회사 안의 사람들은 회사 정문 앞의 사람들이 얼마나 여기 있었는지 알고 있을까? 참가자의 말을 빌리자면 회사는 마치 ‘장난’을 치고 있는 듯 했다.

회사 앞 농성장에서 투쟁에 참가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진보신당에서 일하다 이 투쟁에 참가했다는, 한 때 트럭 운전을 하며 먹고 살던, 가래침을 많이 뱉던 사람이다. 미처 이름은 물어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그 동안의 투쟁을 “지난하고 힘들고 외로운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처음 회사에서 쫓겨난 기륭전자 노동조합원들은 회사의 부당한 해고에 맞서 일터로 돌아가려는 싸움을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고 회사 측과 여려 차례 만나 교섭을 시도해 봤지만 회사의 입장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1년이 흐르고 2년이 흘러도 그들은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 동안 지쳐버린 조합원들도 많고 그리하여 떠나가 새 일자리를 찾거나 그대로 실업자가 돼 버린 조합원들도 많다. 처음 출범할 당시 200여명에 달했던 기륭전자 노동조합원들은 그렇게 떨어져 나가 지금은 30여 명 정도가 남은 상태다.
1124일 간 줄곧 싸워 온 기륭전자 노동자들을 보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지금껏 3년 가까이 회사에 요구를 해도 들어주질 않는데, 계속 죽기 살기로 한다고 무엇이 달라지겠냐고. 그 3년 가까운 시간 동안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더 편한 삶을 살 수 있지 않겠냐고.
이에 대해 ‘그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단순히 돈 몇 푼을 더 받기 위해 지금까지 투쟁을 하는 건 아니에요. 만일 그랬다면, 벌써 직장을 구하고도 남았죠. 더 좋은 일자리건 더 나쁜 일자리건 간에. 저희는 이 싸움을 ‘정의’를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저희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저희의 아들, 딸들이 인간답게 일하기 위해서 싸우는 거죠. 그것이 저희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였죠.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싸울 겁니다. 이 땅의 비정규직의 힘을 하나로 모아 비정규직이 없는 그 날까지 싸울 겁니다.”
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컨테이너 박스 옆의 금속 촛대 하나가 보였다. 사람이 주저앉아 있는 형상의 촛대였다. 그 촛대에는 이 말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일하고 싶다.

현장의 컨테이너 박스에는 사다리 하나가 놓여 있다. ‘그 사람’이 위에 올라가 보라 한다. 위에 올라가 보면, 기륭전자 관리실 위에 천막 하나가 있다. 그 곳은 바로 김소연 노조 분회장이 94일 동안 단식투쟁을 했던 곳이다.
오랜 투쟁을 계속해 온 기륭전자 노동자들. 그러나 아무런 진전도 없다. 이들은 단식투쟁을 택했다.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씨는 경비실 옥상에 올라가 단식투쟁을 벌였다. 건강은 날로 악화돼 갔다. 8월 14일, 의사가 “폐에 물이 찬 것 같다”며 빠른 입원을 권유했으나 유 씨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김소연 분회장은 8월 12일, 최소한의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소금과 효소마저 끊었다. 8월 16일 오전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씨는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김소연 분회장은 병원 치료 후에도 단식을 계속했다. 김 씨의 몸은 야위다 못해 뼈가 삭아갈 정도였다. 결국 단식 94일 째, 김 분회장은 병원으로 실러 가고 단식은 끝났다.
나는 김소연 분회장과 유흥희 씨가 단식한 그 천막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아무 인기척 없는 기륭전자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옥상에서 보이는 서울을 보았다.
‘기이한’ 일이었다. 남산 정상의 서울타워를 보면, 휘황찬란하기 그지없는 고층 빌딩을 보면, 우리대학 앞과 도곡동, 역삼동에 있는 초고층 아파트를 보면 우리는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자주 말하는 ‘선진국’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그 빌딩에서 조금만 지하철을 타고 가 보면, 최저 임금보다 10원 더 받으며 일하다 문자메시지로 해고당한 후 1124일, 26976시간을 내리 싸워 오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역 철탑에 올라가고 여러 정당인을 찾아가 ‘읍소’를 하건, 사람이 94일 동안 밥 한 끼 입에 대지 않다 결국 영양실조로 병원에 실려 가건, 그 노동자들의 요구를 지금까지도 들어 주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천국 속의 지옥, 꽃밭 옆의 시체만큼이나 이질적이고 놀라운 광경이다.

취재를 마치고 맥주 한 캔을 사 먹기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 맥주 한 캔을 고르고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에는 나보다 2~3살 많은 듯한 ‘알바’ 한 사람이 서 있다. ‘비정규직하면 무엇이 떠오릅니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주로 “알바요”라고 대답하곤 한다.
순간, 기륭전자 앞에 있던 ‘그 사람’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사람’과 편의점 ‘알바’의 모습이 겹쳐졌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의 모습이 겹쳐졌다.
나는 대학생이다. 대학생은 20대가 대부분이다. <88만원 세대>가 지금 이대로 흘러간다면, 20대의 95%는 필연적으로 비정규직이 된다고 한다.
‘그 사람의 문제’는 나의 문제요, ‘알바’의 문제다. 그리고 ‘그 사람’의 싸움은 나를 위한 싸움이요, ‘알바’를 위한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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