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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그리고 우리 하나 - 두번째 이야기
권현우(정치대ㆍ정치학부1) | 승인 2008.11.11 22:04

바닷가에 인접해 있는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생각보다 허름했다. 우리 사회에서 에다가와가 널리 알려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 도지사가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짓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힌 데 대해서, 일본 내 조선동포들과 남한의 국민들, 그리고 북한 주민들까지 힘을 합쳐 그 학교를 지켜 낸 것을 우리 언론에서도 상당한 주목을 했던 것이다.

재판에서 이긴 덕에 학교가 사라질 위기는 사라지게 되었으나, 아직도 열악한 재정으로 인해 건물 등의 시설은 수리할 수 없었다. 건물 안의 삐걱거리는 마루가 그들의 상황을 대변했다.

하지만 지지 않는 희망이 있었다. 체육을 가르치시는 백령자 선생님의 말씀이다.
“요즘은 학교에 오는 재미가 있다. 재판이 종료되기 전에는 혹시 아이들이 일본 학교를 가거나 더욱 먼 거리에 있는 조선학교에 갈 수도 있다는 불안함이 나를 옥죄었다. 하지만 지금은 학교가 없어진다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칠 수 있어서 매우 편안하고 기쁜 마음으로 수업을 하고 있다.”

학교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불안감, 그것도 타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세워진 학교가 사라진다는 것은 민족의 단절을 의미했다. 음악 선생님이신 김순남 선생님의 말씀이다.

“저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교사입니다. 음악 교사로서 아이들의 입에서 우리말로 된 노래가 나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교문 밖을 나가면 일본어를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 교실 안에서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를 때, 우리 민족이 이 일본 땅에서 살고 있다는 존재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더욱 크게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말은 그들에게 자신의 영혼을 울리는 민족의 말이자 목소리였다.

에가다와 조선학교에서 나와 그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 주위의 땅은 이제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땅이 되었는데, 과거 쓰레기 매립장을 우리 동포들이 일구어서 만든 땅이었고, 그 당시의 집들은 지금까지 남아, 흉물이지만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학교 옆의 놀이터를 지나다 우연히 우리말이 들려 청년 티가 나기 시작하는 남학생에게 질문을 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의 학생입니까?”
“그렇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 그리고 저는 2주 전 조국 방문을 했습니다.”
“조국 방문?”
“예, 저는 북조선공화국을 졸업여행으로 다녀왔습니다.”
우리는 순간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멀게만 느껴졌던 북한이 이 학생에게는 조국이라 불리고 있었다. 이들의 조국과 우리의 조국은 다른가? 한민족의 조국은 다를 수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에다가와 조선학교는 슬픔과 기쁨의 역사를 동시에 간직하고 있다. 우린 그곳에서 눈물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꽃을 보았다.
다음 날 우리는 북한에서 설립한 유일한 해외 대학인 조선대학교에 가게 된다.

권현우(정치대ㆍ정치학부1)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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