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 코리아 국제학원을 가는 길은 쉬운 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곳을 가기 위해 12시간 이상의 기차를 탔고, 5시간을 역 앞에서 노숙해야 했다. 일본어 통역과 길 안내를 담당한 본인의 실수로 열차를 잘못 타게 되었고, 결국 하룻밤을 마이바라 역 앞에서 노숙했다. 동경에서 출발하여 17시간 만에 오사카부(府) 이바라키시(市)에 있는 KIS에 당도하였다.

새로운 건물에 깔끔한 모습의 KIS는 1달 전에 신축되어 우리가 도착한 그날, 이삿짐을 풀고 있었다. 우리는 KIS 도서관의 도서를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KIS는 일본에 있는 민족학교의 틀을 넘어서 새로운 민족교육 시스템을 창출하려 세워진 학교이다. 학생 수는 30명이 채 되지 않지만, 학생의 구성은 한국인, 북한국적의 조선인 그리고 일본인으로 구성되어 있고 선생님의 구성 역시 그와 비슷한 구성이다. 교감이며 체육을 담당하고 계신 박영경 선생님께서는 ‘세계화와 민족주의의 조화’가 이 학원의 설립목적이라 말씀하시면서, 막 문을 연 학교니 만큼 많은 부분에 어려움이 산재해 있지만 그만큼 더욱 강한 의지로 학교를 키워나가겠다는 의지를 보이셨다.

학교 주변에는 ‘코리아 학원 반대’라는 붉은 팻말들이 서있다. 일본 내에서 ‘북한인’이 다니는 ‘민족학교’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인 것인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루 종일 KIS에 있으면서 많은 일을 도와드렸고 또 많은 이야기를 들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게 다가온 점은, 한반도 내에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통일이라는 것이 현해탄 건너 일본 땅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확신이다. 같은 교실에 앉아서 같은 말로 공부를 하는 것이 통일이 아니겠는가. 사소한 시작의 물결이 큰 파도가 되어서 현해탄을 건넜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하지만 그 기운이 바다를 건너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한 번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상으로 <건대신문>에 4번에 걸쳐 ‘일본 내의 조선인과 민족교육’에 대해 기고한 글을 마치려 한다. 우리가 잘 모르는 일본 사회의 조선인은 이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차별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세계의 누구보다 중첩된 역사적 상흔을 지닌 일본 내 조선인은 한반도에서의 경작을 위해, 오늘도 묵묵히 일본 땅에서 씨를 뿌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건대 학우들에게, 친구로서 권하고 싶은 것이 있다. 넓은 세계로 여행을 많이 가시라. 하지만 단지 관광을 위한 여행보다는 한 가지 주제를 정해서, 그 나라 속에 살아 있는 역사의 숨결을 만나고 오거나 꼭 그 나라에 가서 만나 뵙고 싶은 분이 있다면 연락을 해보고 만나고 오길 바란다. 우리 같은 대학생을 누가 만나주겠나 라고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우선 전화를 하거나 전자우편을 보내면, 의외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서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장담한다.

여름에 시작된 민족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추운 겨울, <건대신문>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속에 훈훈함으로 남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미숙한 글을 올려주신 <건대신문>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힘들때 딱 한걸음만 더.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