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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꾸는 자의 여행기 ② - 네팔편
허영지(법과대ㆍ법2) | 승인 2009.03.30 15:35

네팔에 도착하자마자 일이 생겼다. 티베트에서부터 함께 동행한 '켄지'라는 일본인 친구가 지대가 티베트보다 훨씬 낮은 네팔에 오자마자 알 수 없는 복통과 고열 감기가 겹쳤는데, 전형적인 고산병 증상이었다. 문제는 네팔에 체류하던 내내 그 친구가 숙소 밖을 나가지 못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하루 지나면 나아지겠지'라고 기대하며 켄지를 병간호를 하는 사이, 어느새 다음 행선지인 인도로의 일정이 성큼 다가와 버렸다. 서서히 화가 밀려왔다. 나에게도 평생에 한 번뿐일지 모를 네팔 땅인데 그 친구로 인해 2주일 동안 내가 네팔에서 했던 일은 카트만두 근교의 일식당을 전전한 것과, 외국인 병원에서 영어가 서툰 켄지를 위해 영문 처방전을 받아오는 것뿐이었다. 짜증이 밀려왔지만 미운정이 들어서일까? 결국 나는 네팔에서의 체류기간 대부분을 켄지를 병간호하는 것으로 소일했다.

 켄지가 먼저 귀국한 후에 짧게 다녀온 치트완 국립공원에서 나는 일생동안 잊지 못할 두 번의 인연을 만났다. 첫 번째 인연은 가족 여행자였다. 독일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그들이 현재 사는 곳은 싱가폴. 아버지는 싱가폴 내 유럽피안 학교의 교장이었고 어머니는 미국에서 로스쿨을 졸업하고 싱가폴에서 교수와 변호사로 활동하는 소위 '일류집안'이었다. 1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마크와 세라라는 두 아이들은 독어와 영어에 능통하였다. 영어 하나만하더라도 24살 늦은 나이에 abc를 깨달은 내 입장에서 그 아이들이 한없이 부럽게 느껴졌다.

   
네팔의 치트완 국립공원에서 일정을 함께 했던 외국인 가족 여행자들과 작별하기 전 사진을 함께 찍었다. 왼쪽부터 캐서린, 필자, 세라, 마크, 한스

그 가정은 언어교육을 가정에서부터 실천하고 있었다. 아이들 간의 대화는 독어와 영어, 아이들과 아버지와의 대화는 무조건 독어, 아이들과 어머니와의 대화는 무조건 영어만 쓰도록... 부모는 평소 아이들에게 무척 자상하다가도 혹시라도 아이들이 이 규칙을 어길 시에는 어김없이 매섭게 충고하였다. 그런 그들이 독어를 하지 못하는 나를 위해 모든 규칙을 깨고 여행 내내 영어만을 사용하였다. 그러자 웃지 못할 해프닝도 벌어졌다. 평소 습관으로 인해 아버지와 아이들이 종종 독어를 사용했고 그 때마다 그들은 Sorry를 반복하며 나를 배려해주었다.

 그간 아시안을 배려하는 외국 여행자들을 꽤 보았지만, 그렇더라도 인종차별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세계 여행 중 만난, 진정한 교양과 배려를 행동으로 일깨워준 처음이자 마지막 사람들이었다. 국립공원 일정을 그들과 함께 한 것 자체가 행운이었고, 그들로부터 모든 순간 모든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작별하기 전 가슴속에 담아둔 진심을 말했다. "이제껏 꽤 오래 여행해왔고 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이렇게 좋은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신들이 정말 멋지고 위대한 부모님입니다. 저 또한 나중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면 당신들처럼 멋진 부모가 되고 싶습니다." 그들은 과찬이라며 뼈 있는 한 마디를 해주고 떠났다. "세상의 아무리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도 늘 문제를 가지고 있는 법이지.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단다. 싱가폴에 오게 되면 꼭 연락하거라. 우리가 너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거야."

 두 번째 인연은 나를 무척이나 설레게 했던 '제시카'라는 미국인 여성이었다. 첫 인상이 무척 깊었다. 서양인들은 어딜 가든 대접을 받기 때문에 늘 대화를 주도하는 편인데, 이상하게도 젊은 서양인 여성 한 명이 알아듣기 힘든 수준의 엉터리 영어를 떠드는 제 3세계 국가 사람들의 대화를 지켜보며 계속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영어에 서툰 동유럽 사람일 것이라 짐작했는데 알고 보니 미국인이었다. 마침 그날 저녁 우리는 현지인들의 전통공연에 함께 초대받았고, 그녀의 옆자리에 다가가 정중하게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니 "Yes please"를 외치며 자리를 권해주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아시아 지역의 빈국에 관심에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 졸업 후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뜻 깊은 일을 해보고 싶어 국제식량기구 직원이 되었고, 현재는 캄보디아에 근거지를 두고 아시아 전역을 돌아다니며 빈국에 구호물자 조달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디 출신인지 물었다. "아칸소." 아칸소는 빌 클린턴의 고향. "Like Bill Klinton?"하고 물으니 "Yes exactly"라며 웃으며 대답한다. 그녀는 식량 원조를 위해서 여러 번 북한정부에 방문 관련 서한을 보내었지만, 북한정부가 너무 완강하게 거절해서 지금은 북한을 제외한 아시아의 모든 빈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보면서 진정한 젊음의 힘이 무엇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젊음이 왜 그토록 인생에서 눈부신 기회인지, 젊음의 진정한 자유와 도전이 무얼 의미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용기가 어떠한 것인지 분명히 배웠다. 카드만두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녀와 길거리에서 잠깐 마주쳤지만, 늘 아시안 일행들과 함께 있는 그녀와 개인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다시는 연락할 수 없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네팔을 떠날 무렵이 되어서야 여행이란 꼭 내가 중심이 되어 무언가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전혀 모르던 사람과 인연이 되어 그로 인해 즐거움을 찾고 때로는 그들로 인해 실망도 느끼며 성장해가는 과정 하나하나가, 결국 인생이라는 긴 여행의 소중한 부분임을 그 때서야 깨달았다.

허영지(법과대ㆍ법2)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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