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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의 여행기 ⑥ - 에필로그
허영지(법과대ㆍ법2) | 승인 2009.05.29 14:53

아주 오랜만에 여행 앨범을 펼쳐보았다. 뉴질랜드로부터 시작해서 일본까지 이어지는 추억의 조각들. 나는 한참동안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의 늪에서 허우적대다가 결국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학점에 발버둥치며, 스펙에 목숨 걸며, 그렇게 다분히 근시안적인 생계형 인간이 되어버린 전형적인 한국남자인 나. 그런데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나는 세상을 누비던 지구별 여행자였다.

 지난 해 여름 한국에 돌아오고 난 뒤 나는 서둘러 학부 1학년 과정을 마치고 전공과정으로 진학해야 했지만, 아직도 어디서 무엇을 공부할 것인지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양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고 또렷해지기 시작했으니 나는 이제 완전한 성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정확히 모르고 있었으며, 그나마 알고 있던 부분들을 향해 전력으로 도전할 용기조차 충만하지 않았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한 가지, 내부의 소리, 그저 계속해서 나아가라는 비장한 목소리였다. 나는 그것이 이끄는 대로 맹목적으로 따라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것은 늘 버거운 일이었고 나는 날마다 그것에 반항했다. 이러다 내가 미치지 못해 미쳐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속에 끝없이 반성과 후회를 거듭하기도 했다. 그렇게 2008년 2학기는 숱한 고민과 물음 속에서 의무적인 성실함으로 무장하여 미치도록 치열하게 시간과 싸워나가야만 했다.

 그렇게 한 해가 지났다. 그리고 2009년. 학부를 수석으로 마쳤지만 성적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 안의 목마름과 답답함은 가시질 않았고, 나는 무언가에 나의 99%가 아닌 100%의 온전한 열정을 바칠 수 있는 것이 필요하였다. 그것은 이성과의 뜨거운 사랑일수도,

그토록 사랑했던 역사와 철학 공부일수도, 아니면 스펙을 향한 전력질주가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그것들 중 어느 것 하나도 확실하게 경험하지 못하고서,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다시금 몸을 던졌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직 한 가지 생각만큼은 분명해졌다. 나는 다시금 미친 듯이 여행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뉴질랜드에서 래프팅을 즐기고 있는 팀원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

 올해 초 나는 몽골 행 비행기 표를 예약해놓았다가 취소하였다. 새로운 전공인 법학을 공부해야했고, 한자를 공부해야 했고, 토익 성적을 올려놓아야 했고, 각종 스펙을 쌓아야 했다. 현실세계에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여행을 포기한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성급했지만 현명한 결단이었다. 서서히 기말고사를 준비해야할 지금 시점에서도 나는 시험공부 이외에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다, 방학을 하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들은 여전히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인다. 그러다 문득 들었던 생각. '어쩌면 내 인생의 첫 번째 세계여행이 내 인생의 마지막 여행으로 끝나버리는 것이 아닐까.

 처절할 정도로 미친 듯이 공부했던 중간고사의 완벽한 실패, 인턴 활동을 통해 경험한 가혹한 학벌 차별,갑작스러운 전 대통령의 자살, 인관관계에서 거듭되었던 실수와 부침의 연속. 요즘 나는 이따금씩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여행을 통해 얻었던 삶의 귀중한 경험과 가치들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난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옛날 얘기를 자꾸 되풀이하는 것은 늙어간다는 징후이고, 나에게는 앞으로 해야 할 위대한 일들이 과거에 했던 일보다 훨씬 많다고 믿기 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기는 세계여행 중에 틈틈이 써온 일기와 1500여장의 사진자료, 세계 각국의 여행 친구들과 주고받은 서신을 기초로 쓴 것이다. 영, 국문 초고를 세계 각국의 친구들과 돌려 읽으면서 때로는 웃고 때로는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여행 당시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일들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고, 아쉽게 보낸 지난날의 안타까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나는 소중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격변하는 세계를 마음껏 누비며 그 변화의 현장을 몸으로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엄청난 행운아였다. 중학교 수준의 영어 단어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여행을 떠나 지금은 빼어난 어학실력을 갖추게 되었고, 늘 학벌에 대한 열등감으로 고개 숙이고 다니던 내가 학부를 수석으로 마치게 되었던 원동력은 분명 여행을 통해 다시 발견한 삶을 향한 포부와 열정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다시 2007년의 여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면 나는 주저 않고 "내가 했던 세계 여행을 다시 하겠노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 여행을 통해 발견한 드넓은 세상과 꿈을 향한 원대한 포부는 나를 행복하게 했고,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정은 나를 가슴 뛰게 했으며, 모든 도전 중에 경험했던 장애물을 극복하기 위해 온몸을 내던져 노력한 뒤에 주어진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나는 감사를 배웠다.

 영원토록 꿈꾸고 도전하고 감사하는 삶. 그리고 열정이 있는 삶이 바로 여행을 통해 내가 얻은 삶의 유일한 진리라고 믿는다. 그러한 삶이 언제나 내 목표였으며, 앞으로도 죽는 날까지 변함없이 뜨거운 열정으로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젊다.

여행 관련 문의 - fromlegend@hanmail.net , 010 - 3787 - 5944

허영지(법과대ㆍ법2)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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