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를 켜면 ‘광장’이란 단어를 참 많이 듣는다. 대체 어떤 광장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지 들어보니, 바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5월 23일부터 전경버스로 봉쇄됐던 서울광장이 지난 4일에 다시 개방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근래에 취재를 위해 2호선 시청역 근처에 거주하고 계신 노숙인분들을 뵈러 가야했기 때문에, 수차례 서울광장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시민들에게 개방된 광장에서는 서울시가 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추진한 ‘양질의 문화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잔디에 누워 이야기하며 공연을 감상하는 시민들 덕분인지 서울광장의 모습은 전경버스가  성벽 같이 둘러쳐져 있던 때와는 사뭇 달라보였다. 평온함 그 자체였다. 아, 혹시 모를 불법시위의 위험에서 시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저 멀리서 대기 중인 전경 분들과 연행자들을 위한 아늑한 버스 10여대가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말이다.

오는 10일에는 6.10항쟁 22주년을 맞아 서울광장에서 ‘6월 항쟁계승 민주회복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시와 경찰에서는 계속 불허입장을 통보했다. 행사가 “광장 조성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우리는 여기서 광장의 정의를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사전적 의미의 광장이란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게 거리에 만들어 놓은 넓은 빈 터, 혹은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거나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뜻한다. 즉, 상호 의사교환의 장으로서도 기능을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서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의사를 표출하는 집회를 “광장 조성목적에 맞지 않는다”며 불허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렇다면 대체 광장은 누구의 것이며,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시민들이 진정으로 광장에서 원하는 것은 전경들이 대기하고 있는 가운데 감상하는 ‘양질의 문화공연’이 아니다. 목청 높여 얘기할 수 있는 자유로운 의견표출의 장을 원하는 것이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의 구속사건 이후 다음 아고라와 같은 ‘실체 없는 광장’은 누리꾼들의 발길이 전에 비해 준 것이 사실이다. 실체 없는 광장마저도 공권력의 감시와 방해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상징이자 다수의 시민들을 위해 있어야 할 ‘광장’이 오히려 다수를 억압하는 공간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들은 부디 기억하길 바란다. 시민들을 위한 광장이 더 이상 가로막혀서는 안 되며, 실체가 없는 것이든 있는 것이든 ‘광장’에서 터져 나오는 그들의 목소리를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힘들때 딱 한걸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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