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노숙인들을 만나다

익명의 노숙인, 시청 근처 지하도 거주

△노숙생활을 얼마나 하셨습니까?
6월 17일이면 만 3년이 된다.
△지금 전선을 가지고 뭔가를 하고 계신 것 같은데 무엇인가요?
전선피복을 벗겨 구리를 빼내는 중이다. 이렇게 모은 구리를 팔아 약간의 수입을 얻는다.
△그래도 수입은 있으셔서 다른 분들보다 나으신 것 같은데, 끼니는 어떻게 해결하시는지요?
돈을 조금 벌긴 하지만 뭘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액수라 주로 담배를 사는데 쓴다. 식사는 이곳저곳에 있는 무료급식소에서 해결한다. 노숙 초기에는 어디서 밥을 주는지 몰라 밥 먹으려고 10시간 정도를 헤맨 적이 있다. 처음 노숙하면 3~4일 동안 굶어도 밥 주는 곳을 몰라 그대로 있는 경우도 많다.
△노숙생활을 하면서 불편한 점은 무엇입니까?
역을 벗어나 밖으로 나오면 적응이 안 된다. 왠지 움츠러들고 자신이 작아지는 것 같다. 이래서 노숙인들이 옥외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이다. 지하철 타면 사람들 눈치가 보여 금방 내릴 수밖에 없다. 처음 노숙할 때는 혹시나 아는 사람을 만날까봐 수중에 돈이 있어도 음식점에 가지 못했다. 밤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창피함 때문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루기도 했다.
△주위에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있으신가요? 혹시 아는 사람들 중에 노숙생활을 벗어나신 분이 있으신가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알고지내야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그러나 내 주변에 이 생활을 청산한 사람들은 거의 없다. 벗어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더 해주고 싶은 말씀은?
부디 당신과 같은 젊은이들은 노력해서 나 같은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곤모씨(47), 시청역 거주

△언제부터 노숙생활을 시작하신 건가요?
국민학교 졸업 이후로 계속 노숙을 했다. 마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친형님이랑 같이 노숙을 한다. 어떻게 해서 서울까지 오게 됐는지는 말해줄 수는 없다.
△현재 일자리가 있거나 정부로부터 지원받으시는 부분이 있나요?
연금이나 지원받는 건 없다. 몸이 건강했을 때는 공사판 막노동도 했는데, 지금은 다리가 아프고 기관지도 안 좋아서 일을 못하고 있다.
△목발을 보니 다리가 많이 안 좋으신 것 같군요. 마지막으로 병원을 가보신게 언제인가요?
작년에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었다. 그때는 약도 타서 먹고 그랬는데 한동안 병원을 안가다보니 다시 안 좋아졌다.
△지금 특별히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근처 교회로 밥을 먹으러 다녀서 끼니는 잘 거르지 않는다. 더 바라는 건 없다. 다만, 목욕할 돈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 전에는 사람들이 봉사활동도 나오고 그랬는데 요즘은 뜸해진 것 같다.

황모 할아버지(76), 시청역 거주

△노숙생활을 하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어렸을 때 고아원에서 살다가 22살부터 이 생활을 시작해 50년이 넘는다. 원래 을지로에 있었는데, 역에서 근무하는 사람이 잠을 못 자게 했다. 시청으로 온지는 열흘밖에 안됐다.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신가요?
이때까지 살면서 병원에 가본 적은 없다. 숨 차는 거 빼곤 아픈 데는 없다.
△지하도 안에만 있으면 갑갑할 것 같은데 낮 시간 동안에는 무엇을 하며 지내시나요?
지하도에 있으면 할 일이 없으니 낮에는 청계천과 시청 주위를 돌아다닌다. 하루 종일 굶는 경우가 다반사다. 밖에 나가지 않으면 교회에서 나눠준 책을 읽는다. 몸이 좀 괜찮아져서 좀 걸어 다닐 수 있을 땐 종로 노인종합복지관에 가서 밥을 먹는다.
△역이나 지하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쳐다볼 때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여기 있으니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이건 뭐 인간취급을 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 인심이 지독해진 것 같다.
△현재 고정적인 수입이나 정부에서 지원받고 계신 게 있으신가요?
기초생활 수급대상자라서 돈이 조금 나오긴 하지만 몇 달 방세 내면 끝이라 다시 거리로 돌아오게 된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신발이 필요하다. 바닥에 구멍이 뚫려서 비오는 날 밖에 나가면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그래서 비오는 날이면 밖으로 안 나간다. 그리고 커피가 마시고 싶다. 자판기 커피 한잔 마시고 싶어도 300원이 없다.

익명의 노숙인, 을지로입구역 부근 거주

△다른 쉼터나 보호센터 같은 곳에 갈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노숙을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는가. 그냥 이도저도 안되니까 그런 거지. 여름이라 밤에는 지낼만하다.
△따로 돈을 벌거나 지원받는 것이 있으신가요?
관절도 안 좋고, 속도 이상해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 원래 리어카를 끌고 박스 줍는 일을 했었는데, 리어카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하루 1~2만 원 정도의 벌이가 사라졌다.
△낮에는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시나요?
낮에는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니거나 아니면 서울역이나 용산근처를 돌아다닌다.
△정부나 시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으신가요?
더 필요한 건 없다. 끼니는 서울역이나 용산역 근처에서 때우고 겨울에 추워지면 쉼터로 들어가면 되니까.

힘들때 딱 한걸음만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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