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5월은 극장가에 거대 자본으로 중무장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상대적으로 기술력과 배급력이 떨어지는 한국영화는 5월 이후 여름시즌 관객몰이에 고전을 겪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역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을 대표하는 두 감독이 나란히 신작을 발표해 호평을 받았다. 바로 <박쥐> 의 박찬욱과 <마더>의 봉준호 감독이다.

두 감독은 각각 63년생, 69년생으로 이른 나이에 한국영화의 거장 대열에 합류했고 초기작을 제외하고는 만드는 영화마다 관객과 평단의 환호를 받아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대학에서 각각 철학과 사회학을 전공하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담론을 쌓아왔고 이것은 고스란히 그들의 영화세계에 반영된다. 영화는 대학시절 동아리를 통해 공부했고 장편영화 데뷔작에서 흥행실패를 맛보았지만 배우 송강호와의 작업을 통해 한국영화 최고 흥행작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세계는 다양한 차이점을 보인다. 박찬욱 감독은 92년과 97년에 발표한 <달은 해가 꾸는 꿈>과 <삼인조>가 평단과 관객으로부터 동시에 외면당하는 힘든 시기를 보낸다. 하지만 그는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분단이라는 한국만의 특수하고 예민한 소재를 가지고 비극적인 드라마를 완성한다.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들과의 조화와 김광석의 음악까지 여러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한국 영화 최대 관객수(579만명)의 기록을 세운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 해에 청룡상, 대종상, 백상영화상까지 한국의 권위 있는 영화상은 모두 휩쓸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후 박찬욱은 마니아들이 꼽는 그의 최고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발표한다. 그의 실험성을 높이 산 평단의 지지와는 달리 지나치게 잔인한 그의 영화적 묘사 때문에 관객들의 외면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통해 박찬욱의 영화언어가 무엇인지 각인시키며 마침내 같은 테마로서 관객과 평단 모두를 만족시킨 <올드보이>를 발표함에 이른다. 이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칸느영화제에 초청된 것도 모자라 2등에 해당되는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하면서 한국영화사의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을 기록한다. 그는 <친절한 금자씨>로 복수 3부작을 마무리 짓고 저예산 영화인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를 거쳐 <박쥐>를 발표하기 이르렀다.

봉준호는 93년 <백색인>, <지리멸렬> 등의 사회성 강한 단편영화를 만들어 주목을 받는다. 이후 꾸준하게 장편영화의 각본을 쓰다가 2000년 <플란다스의 개>로 장편 감독에 데뷔한다. 이 영화는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강아지 실종사건을 소재로 측은하지만 동시에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을 조화롭게 배치시키며 자본주의에 대한 조소를 보내고 있다. 비록 흥행에는 실패하지만 봉준호의 빛나는 개성을 확인 할 수 있는 작품으로서 이후 작품의 소재와 규모가 커지고는 있지만, 이 영화에서 나타난 그의 감성만은 유지되고 있다. 그는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그 해 최고 흥행기록을 세우고 국내의 영화상을 휩쓸며 이름을 알린다.

실화라는 점이 대중의 구미를 당겼음은 분명하지만 개별 상황을 우스꽝스럽고 독특하게 표현하면서도 전체적인 이야기를 사실적이고 진실하게 끌고나가는 그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이 탁월하게 발휘된 웰메이드 영화이다. 직후 발표한 작품은 지금까지도 한국영화흥행 1위(1300만명)로 남아있는 <괴물>이다. 이 영화는 한국 사회에 내재되어있는 사회적 문제들을 거의 빠짐없이 훑는 생경한 기교를 부린다. 게다가 괴물의 역할은 조연 정도로 미뤄놓고 흥미로운 인간 캐릭터의 충돌을 이야기 안에 촘촘히 매우며 일반적인 괴수영화에 대한 기대를 의도적으로 무너뜨린다. 그럼에도 관객과 평단 모두를 만족시켰다는 점은 봉준호가 한국 영화사에서 가장 개성 넘치며 동시에 대중적인 영화감독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 이후 봉준호는 한국 사회에서 좀 더 특수하게 발휘되는 ‘어머니의 사랑’을 소재로 <마더>를 발표한다.

두 감독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감독의 이름만으로도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올 수 있는 티켓파워를 지닌 감독이다. 박찬욱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기초로 복수나 신앙심 등의 개인의 문제를 소재로 삼는다. 봉준호는 가족을 기본단위로 하여 한국 사회에 깊게 박혀있는 그릇된 관습이나 부패를 소재로 삼는다. 박찬욱은 영화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며 장르를 변주하는 것을 즐긴다. 봉준호는 영화의 가장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통제하며 자신의 이성과 감성이 완전하게 결합된 영화를 만들어 낸다.

 <박쥐>는 다수 관객과의 소통에는 실패했지만 미학적 성취를 통해 영화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와 칸느영화제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마더> 는 한국만의 특수한 정서를 싸늘한 시선으로 구현하며 다시 한 번 대중과의 소통에 성공했다. 관객과 한 발짝 멀어지는 대신 영화적 성취를 선택한 박찬욱과 점점 대중성이라는 무기의 파괴력이 강해지는 봉준호. 이 두 영화인이 힘을 합쳐  박찬욱 제작,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를 2010년에 개봉한다고 발표했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감독의 행보에 따라 장래 한국 영화의 체질이 결정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기에 이 영화가 어떤 조화로운 색깔을 뿜을지 많은 이들이 기대하고 있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