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락사, 존엄사, 연명치료중단, 생명연장조치중단, 의사조력자살 등 용어는 달리 하더라도, 이를 허용할 것인가의 여부와 어느 범위까지 어떠한 절차에 의하여 허용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6월에 환자가족의 요구에 따라 인공호흡기부착 환자의 퇴원에 동의한 담당 의사를 살인방조죄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적이 있다(일명 ‘보라매병원사건’). 또한 대법원에서는 지난 5월에, 환자가족의 인공호흡기 제거요구를 병원이 거부하여 진행된 소송사건에 대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할 것을 확인한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존엄사논쟁’이 재연된 바 있다(일명 ‘세브란스병원사건’). 이러한 유사한 상황은 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법원의 판결을 받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인공호흡기 등 연명치료장치를 떼어내도 되는지에 관해 규율을 하고 있는 법령이 없기 때문에, 환자가족들은 물론이고 의사들도 당황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입법자인 국회가 무능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에 발생하였다기 보다는, 이 문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안이기 때문에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의료기술이 발달되기 전에는 사망을 과정이 아닌, 하나의 사건으로 파악하였기에 연명치료중단 등의 복잡한 문제가 야기될 소지가 없었고, 이러한 의미에서 안락사나 존엄사, 연명치료중단 등의 문제는 인식조차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의학기술수준이 발달하여 이전에는 사망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도 연명치료가 가능하게 되면서 문제 아닌 문제가 발생하였으며, 연명치료를 원치 않고 자연사하기를 바라는 환자나 환자가족들의 소망을 법적으로 인정할 것인지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존엄사’를 인정하여 자연스럽게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이 이미 2건이나 국회에 제출되었으며, 이에 대하여 종교계 등에서는 법률의 통과는 물론이고 죽음을 미화하는 듯한 ‘존엄사’라는 용어의 사용조차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락사, 존엄사, 연명치료중단, 생명연장조치중단, 의사조력자살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행위유형들을 표상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동정 받을 행위와 동정받기 어려운 행위가 공존하고 있으며, 윤리적으로 비난 가능한 행위와 비난되지 않을 행위, 법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행위와 허용할 수 없는 행위가 공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존엄사’에 대해서는 용어 사용에 있어서부터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며, 존엄사를 허용하는 법률의 입법에 대해서는 우려와 기대가 교차한다. 필자는 우리 사회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연명치료중단이라는 관행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공식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오직 의사를 형사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해 왔다.

 다만, 존엄사를 법률에 규정하여 입법적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은 몇 가지의 선결문제를 안고 있으며, 엄격한 내용적 요건과 절차적 요건을 두어 존엄사의 악용을 방지할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보라매병원사건’이나 ‘세브란스병원사건’ 등을 통해 볼 때, 우리 사회에서 법규화 준비 작업이 섣부르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법령과 제도가 ‘존엄사 당하기 쉬운 경제적 약자’에게도 충분한 의료보호제도를 제공하고 있는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호스피스제도를 두고 있는지, 경제적 이유로 연명치료중단을 선택하지 않도록 국민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보험제도가 작동하고 있는지 등의 과제가 선결되어야 하리라 생각된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