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 건대엔 잔디와 숲이 유독 많았다. 현 예술문화대학과 상허도서관 사이에 사슴농장과 사과나무 밭까지 있었으니 도시 캠퍼스에 시골 경치가 어우러진 셈이다. 학교의 이런 풍수(?) 때문인지 건대생들은 유독 착하고 순진하여 정부정책을 잘 따르는 모범생(?)이라는 몹쓸 칭찬을 다른 대학 학생들로부터 듣기도 했다. 당시 각 대학은 시국 시위로 연일 몸살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국불안이 심해지고 학생운동이 격화되면서 조용하던 건대 캠퍼스에도 크고 작은 소동이 많이 발생한다. 각 대학 내의 잔디에서는 언제나 여러 토론과 모임이 많았는데 시국이 어수선해지면서 정치적 주제로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아졌다. 특히 내가 다니던 문과대에선 동맹으로 휴강을 결정하고 학생들이 시국집회를 여는 일이 종종 생기면서 이런 것에 대한 찬반논쟁이 아주 뜨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변했다기보다는 당시 정세가 우리들에게 어떠한 절박함과 변화를 요구한 것 같다. 어리고 세상 물정도 몰랐던 그 나이에 왜 그렇게 무거운 주제들을 고민하고 세상의 온갖 근심을 다 짊어진 것처럼 행동했는지…

하지만 언제나 모든 사람이 똑같은 생각을 나누고 함께 행동한 것은 아니었기에 그 와중에서 학생들끼리 의견 차이로 대립하는 경우도 많았다. 수업거부가 결정되었지만 개인의 판단으로 수업에 들어가려는 학생도 있었고, 총회의 결정은 존중하면서도 이른바 데모는 절대 안하겠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물론 전혀 시국과 상관없이 데이트를 즐기거나 대낮부터 당구장이나 술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도 있었다. 여하튼 행동은 제 각각이었지만 심각하고, 소란스럽고, 격앙된 분위기가 언제나 캠퍼스를 무겁게 지배했다. 가끔 시위가 격렬해지면 경찰이 대학 내로 진입하면서 최루탄을 쏘고 학생들을 연행하려고 해 캠퍼스는 전쟁터로 변했다. 그럴 때면 도서관에서 평온하게 공부를 하거나 강의를 듣던 학생들과 교수들도 매운 연기를 피해 대피해야만 했다. 학교가 한마디로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학사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지만 당시에는 여러 이유로 수업이나 시험이 중단되거나 연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이 파란만장하게 대학시절을 보냈던 것 같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 때의 진지함과 반항심과 나름의 역사의식이 대학생들을 성숙시킨 것 같다.

우리는 어쨌든 많이 고민해야 했고, 많이 토론해야 했으며, 때로는 비장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결정 했어야 했으니 말이다.

요즘 패기 없는 무력한 20대, 비판의식과 지성인으로서 자질도 전혀 없는 대학생들에 대한 우려가 많다. 시대가 바뀌기는 했지만 젊은 시절의 뜨거운 열정과 비판적 고민은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사람은 언제나 아픈 만큼 성숙해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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