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저널리스트 이상엽(정외ㆍ92졸) 동문을 만나다

충무로 한복판에서 길을 헤매다

▲ⓒ 안상호 기자
만나게 된 그. 그는 자신의 사무실 입구 앞에서 꽤나 늦게 온 우리들에게 캔커피를 건넸다. 그의 사무실은 이상하리만치 묘했다. 마치 시골집 다락방 같았다. 낮은 천장의 작은 계단을 오르면서 이 만남이 어느 옛 사진의 한 장면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간 작은 사무실에 가득한 책들의 향기가 포근함을 더했다. 그 향기 속에서 우리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어언 20여 년간 사진작가의 일을 해 온 이상엽(92졸) 동문, 그를 만났다.

 

 

 

꿈꾸는 여행가? 그건 아닌데~
이 동문은 참 여행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는 대부분 혼자 다니거나 취재를 위해서 나간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런 새로운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96년부터 해외취재를 나가기 시작했다는데, 13년 동안 아시아 쪽 나라들은 거의 다 가봤고, 중국 지역은 30번 쯤 나가봤단다. 그의 작업실 벽에 중국 지도가 붙어 있다. 해외에 나가서 반년 이상 있어본 적도 있다는데, 가족들은 그의 여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덤덤하게 이것이 일상이라고 말했다. 아내도 포기했을 정도라고.

그의 기억 속에 남은 인상 깊은 여행지는 어디일까. 그는 “다 의미가 있고 어느 하나 빼놓고 버릴 곳이 없어”라고 대답한다. 그는 거칠고 고통스러운 여행도 모두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는 세상 곳곳 다른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는 “티베트고원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공감하고 또 그들이 지구촌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지”라고 말했다. 이 커다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눈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을 보고 있는 것일까.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로의 삶들을 관찰한 사진을 다른 사람들이 보고 공감하게 된다면, 난 좋다고 생각해. 그건 내가 잘 하는 분야니까. 여행을 잘 다니고 남들과 잘 어울리고 남들의 모습들을 기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 이렇게 사진작가 일을 하고 있는 것이지.”

그렇다면 이 동문은 어떻게 해서 20여 년간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게 되었을까. 10대도 디카를 들고 사진을 찍는 요즘과는 달리 그는 20대에 들어서야 카메라를 잡았다. 누구한테서 배운 적도 없고 독학을 했는데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참 독특하다. 사진이 자신의 평생 직업인지 시험하기 위해 다른 모든 일을 내팽개쳤다고. 필리핀 민다나오 분쟁지역에 카메라 하나 달랑 들고 가서 사진 찍고 취재했다. 그 성과물이 <한겨레21> 특집기사. 그때부터 사진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결정했단다. ‘정말 뒤도 안돌아보고 한 길로만 가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사진작가를 10년 동안 했는데 너무 일만 했던 탓인지 갑자기 재미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분쟁지역의 사진을 찍는 ‘일’말고 정말로 사진의 재미를 좀 느껴야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그는 수없이 많은 카메라들도 사보고 그 카메라로 사진도 찍어봤다고 한다. 어쩌다 이것에 재미를 느끼다 보니 또 이것이 취미가 되고. 그런데 재미와 취미를 결합한 [낡은 카메라를 들고 떠나다]라는 책이 그가 이전에 쓴 다른 책들보다 훨씬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그가 잡다한 재미를 느끼려고 했던 취미가 하나의 성과물로서 남게 된 것이다. 그때 그가 느낀 큰 깨달음. “아 직업만으로, 일만으로는 분명히 한계에 부딪히게 되는구나.”

그는 “그 한계가 왔을 때 포기하는 게 아니라 그 한계까지 끌고 갈 수 있는 동력이 필요해. 그리고 그 동력이 재미와 즐거움이지”라고 말한다. 그는 그전에는 가족사진도 안 찍어줄 정도로 사진을 일로만 생각했다고 한다. 그가 스스로 자기 자신이 정말 사진을 즐기는 것인가를 회의할 정도로. 이제 그는 주변에서도 사진의 즐거움을 찾는다. 아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술자리에서도. 그는 거기에 사진의 즐거움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찾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찾는다 하더라도 한 직업을 10년, 20년 동안 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는 이런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굶어 죽지만 않을 정도라면 음악에 미쳐서 한 세상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 뭔가 자기가 10년을 열정을 바쳐서 일을 한다면 그 분야에서는 분명히 인정을 받게 되거든”이라고 했다. 그 시기까지 견뎌내는 게 고통스럽겠지만 어떤 일이라도 10년만 한다면 재능이 모자라도 만회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 ⓒ 안상호 기자

그가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 길이란
이 동문은 열심히 기록자로서 자신의 본분을 잊지 않고 수행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사회가 빨리 발전하기 때문에 그것들 속에서 정체성을 잃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고.

“나도 몇 년 더 있으면 이 직업 20년을 하는 거지. 한 사회에서 쉬운 일은 아니야.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는 명인이 되어야 한다고. 나는 사진을 했으니까 사진을 잘 찍어야지. 그런데 사진을 잘 찍는 게 쉽지 않지. 사진을 예술이라고 보면 평생 해도 모자라는 거고.”

사진만 20여 년간 찍어왔는데 아직도 모자라다고 한다. 20년 동안 살아온 기자로서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많이 생긴다’는 이 말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내 나이 40대에서 50대 즈음에 사진을 편집을 하는 그런 매체에 몸을 담아볼 생각은 있어. 그때쯤이면 뭔가 후배들에게 해줘야 된다는 의무감이 좀 있지. 한쪽에 오래 몸담은 사람이 그 사회에 다시 환원하는 역할도 해야 되거든. 예전에 나는 선배들에게 그것을 받았으니까 나도 언젠간 나눠줘야지 하는 생각이야.”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 웹진 <이미지 프레스>와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일찌감치 웹이라는 존재가 한국사회에 등장할 때부터 사진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유망한 매체라고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포토저널리즘에서도 기록성보다 예술성이 앞서는 시대가 온 거야. 시대에 맞게 다른 방식과 다른 형식적 미에 의해 대응해줘야 할 의무가 생긴 거지. 스스로가 변화하지 않으면 과거 사진만 찍게 돼.”

고등학교 3년. 우리는 낮과 밤 쉴 새 없이 대학입학을 위해 공부해야만 했다. 우리가 정말 원하는 직업을 알기 위한 시간은 대학입학 후에야 주어진다. 그런데 우리 대학생에게 정말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의지가 있을까. 우리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스펙을 쌓고 토익점수를 올리려고 하는 걸까. 아닐 것이다. 모두 자신이 하고 싶은 일 또는 해 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자신의 직업이 이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그처럼 한번 도전해보는 게 어떨까? 40년 이상 계속해야 할 직업이라면 이 정도 투자는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넓은 시각으로 사진의 앞날까지 바라보는 그. 20여 년간 그의 렌즈를 거친 수많은 사진들이 그의 얼굴을 스쳐간다. 앞으로 그의 렌즈를 통해 보일 세상을 기대하며 사진 속 다락방을 나섰다.

▲ ⓒ  안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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