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떠나는 저의 첫 도전은 교환학생이 되고 나서야 이루어졌습니다. 그 도전장소를 미국으로 정한 이유는 일단 세계 최대강국 미국이라는 단어가 귀에 익을 정도로 익숙하였고 다른 해외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얻기에도 쉬웠기 때문입니다. 교환학생 합격자가 발표된 후에 이 기회를 알차게 보내기 위해 저만의 목표를 설정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영어실력 향상시키기, 두 번째는 인턴 지원해보기, 세 번째는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 다양한 경험 해보기. 결과적으로 두 번째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제가 선택한 학교 North Dakota State University는 나머지 목표들을 달성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교환학생 프로그램 이후에도 제 태도에 변화를 줄 만큼 멋진 곳이었습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였을 때 우리나라말을 쓸 수 없다는 막막함과 저를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에 많은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이 때문에 준비해온 영어도 잘 나오지 않아 미국에 있었어도 영어실력이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는 소개를 하고 바로 다음 받는 질문이 “넌 북한에서 왔니 남한에서 왔니?”일 정도였습니다.

다른 나라에 잠시 머물다 가는 외국인의 입장으로서 이런 현상을 받아들이는데 거의 반 년 정도 걸린 듯합니다. 여기서 얻은 것은 이러한 무관심에도 꿋꿋해져야 하는 것과 한국이라는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감은 영어능력 향상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 또한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자신감을 갖게 된 두 번째 학기에 저 스스로 제 영어 스피킹에 굉장한 발전이 느껴졌을 정도였습니다.
 
약 1년 정도의 교환학생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꼽자면, 봄방학 때 여러 학생들과 자원봉사 캠프를 떠난 것이었습니다. 사실 자원봉사캠프를 지원해 본적도 없고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봉사활동을 한다는 것이 많이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 저는 교환학생으로서 이러한 캠프는 봉사활동의 경험을 줄 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사귈 수 있는 동기를 제공해 주었고, 열흘 정도의 봄방학을 알차게 보내기엔 적격이었습니다.

당시 이 캠프의 프로그램은 버스를 대절하여 미국의 여러 개 주를 돌아다니며 각 주마다 봉사활동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버스 내 참가자들과 단합활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캠프를 통해 한국에 돌아와서도 연락할 수 있는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들을 늦게야 알게 되고 더 많은 즐거운 시간을 나 누지 못하고 돌아와 많이 아쉬웠습니다.
 

   
▲ 자원봉사캠프 참가자들과 함께

지금의 적극적인 태도를 얻게 해준 이번 교환학생 경험은 한국에 돌아와서도 더 많은 도전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영어 동아리 PEC에서 회장선거 날 사회를 영어로 진행하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지금은 과감히 발행잡지 PEC MAG의 에디터를 맡게 되었습니다. 이번 교환 학생 경험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것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동아리 내 몇몇 후배들이 영어실력과 해외경험을 쌓고자 교환학생을 지원하고 싶다고 하면 적극 추천해 줄 것입니다. 생각하는 것 이외에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고 그러한 것들은 본인의 마음가짐에 따라 달린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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