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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자들이여 모두 한발 앞으로전직 공장노동자, 현직 시인ㆍ르포작가 오도엽(경제 86학번) 동문을 만나다
이동찬 기자 | 승인 2009.10.13 19:20

전태일. 그를 기억하는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며 근로환경 개선을 위해 투쟁하다 분신자살한 전태일. 그런 전태일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의 80년 인생 이야기를 우연히 전태일기념사업회에 갔다가 꼬박 2년 동안이나 받아 적은 오도엽 동문. 지난해 연말, 마침내 그 결실인 「지겹도록 고마운 사람들아」라는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

이소선 여사에게 안부인사를 여쭙고 전태일기념사업회를 떠나려는 찰나 귀에 박힌 말. “언제 또 만나기는 하겠어? 1 ,2년이나 더 살겠어?” 그는 이 말을 듣고 이소선 여사가 자신의 고향 할머니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 처음으로 인간 이소선 여사를 대면해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지금까지 생각했던 노동자의 어머니와는 다른 모습을 찾아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약 3개월간 매일 저녁 이소선 여사의 방에 찾아가 이야기를 들었다는 오 동문. 처음에는 그냥 이야기를 들으며 몰래 녹음기를 켜놨다고 한다. 나중에 그가 이소선 여사에게 말했다. “어머니는 세상에서 어떤 운동가들도 남기지 못한 역사를 몸으로 직접 쓰셨어요. 어머니의 소중한 목소리를 책으로 한번 내보는 게 어떨까요”라고. 그는 갖고 있던 아파트와 자동차를 팔고 이소선 여사 옆방에 전세를 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왜 르포작가가 됐을까? 
오 동문은 1989년 총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수배를 받게 되고 마산, 창원지역에서 공장노동자로 일하다가 수감됐다. 그는 교도소에서 44년 동안이나 수감돼있던 사상범 비전향 장기수를 만났다. 스무 살에 교도소로 들어온 비전향 장기수에게 그가 묻는다, “왜 전향하지 않나요?” 그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분은 어느 날 심한 고문이 끝나고 ’내일 아침이 되면 바로 무릎 꿇고 전향하겠다’는 말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전향 전담반이 보통 때와는 달리 폭력 대신 차를 권했다. 그리고 틀어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는 어머니의 목소리. 그 때 그분은 다짐을 했단다. ‘이곳은 부모도 전향의 도구로 이용하는구나. 이젠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전향을 안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는데.

오 동문은 “그들은 결코 남침을 통해 남한을 적화통일 시키려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저 분단이 낳은 희생자야”라며 그들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머릿속엔 밤마다 장기수들과 만나면서 했던 이야기들이 쌓여갔다. 그는 그 목소리들을 자신만이 간직하기 아깝다고 했다. 그래서 교도소에서 쓰기 시작한 여러 사람의 이야기들. 이 이야기들을 메모해둔 것이 나중에 시가 되어 전태일문학상을 타게 됐다.

그에게는 항상 그를 쫓아다니는 목소리가 있다고 말한다. 15년 동안 공장생활을 했는데, 끊임없이 만난 소외받는 사람, 이주노동자, 비정규직들, 나이든 아주머니들. 이들의 이야기와 삶들이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다고. “같이 땀 흘리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남아있어서 15년 동안 노동자로 있었던 것 같아. 그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었고.”

오 동문은 소외받고 절망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소외받고 고통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치우쳐진 우리 사회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그 목소리들이 중요한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대학 다닐 때부터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는 그.
오 동문이 대학교에 갓 입학한 86년 봄, 학생운동이 활발하던 그 때에는 최루탄이 학교 근처에 난무했다. 최루탄을 피해 같은 과 3학년 선배를 따라 들어가게 된 카페. 그 선배가 말했다.

“버스비가 90원인데 대학생 할인을 받으면 70원이 돼. 너와 비슷한 또래의 노동자들은 90원씩 내고 버스를 타는데 너는 70원을 내고 버스를 타잖아. 그러면 네가 그 20원의 가치만큼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때부터 {전태일 평전}도 읽고 노동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는 정치에 대한 깊은 불신을 느끼면서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것 보다는, 노동운동을 통해 노동자들과 함께 올바른 정치를 이끌어 가야 하는 것이 옳다고 느꼈다.

그때 노동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노동현장에 들어가는 것을 중요시했고, 또 당연시 여겼다. 그는 수배 중이었기 때문에 다른 합법적인 신분을 가질 선택의 여지도 없었지만 그래도 노동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 동문이 구속된 후 같이 노동자가 되기로 한 여러 사람이 떠났다. 자신이 믿던 선배마저 떠났다. 노동자의 삶이 그만큼 힘들고 어려우니까 떠날 수도 있다며 이해한다 했지만 그에게는 아직도 아픈 상처일지도 모른다. 그 일이 있은 후 그는 노동운동을 오기로 계속했다. “그때 우리가 노동자가 되겠다는 신념이 이렇게 약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 노동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이렇게 얇은 신념을 갖고 일을 한다는 건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지.”

오 동문은 노동이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하는 노등은 정말 가치를 창출하는 노동일까? 그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대한민국의 노동은 항상 억눌려 있고 자신의 가치를 상실해가는 노동 같다고. 미래의 노동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실제로 하고 싶은 노동을 찾아가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자신이 하려는 일의 가치를 못 깨닫고 취업을 하면, 자신의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직장에 가서 자신이 임금의 노예임을 깨닫게 돼.”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고시, 공무원시험, 대기업 취직을 준비하지만 가서 하는 일은 가치창출을 하는 노동이 아닌 임금에 구속되어 있는 노동이라고. 그런 노동을 하는 것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를 찾아서 사는 사람은 돈의 액수, 능력을 떠나서 행복하다고 생각해. 내 동기들을 만나 보면 차도 좋고, 옷도 잘 입고 오지만 그다지 행복하진 않아 보여. 나는 공장에서 일했을 때보다 반도 못 벌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훨씬 행복하지.”

“사회에서 벗어난 삶을 경험해 보고 싶어”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것? 기상천외하다. 르포작가라는 일을 그만두게 되면 산속에서 짐승처럼 풀뿌리를 캐 먹어가며 살아보는 것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는 그. “움막을 지어놓고 자연과 하나 되는 그런 삶. 산속에서 자급자족하면서 사는 원초적인 본능의 삶. 그런 삶도 살아볼 생각이야.”

15년간 노동자로 일했고, 지금은 자신이 원했던 르포작가로 일하는 그가 부럽다. 하루하루 돈 벌기에 급급한 사람들, 별다른 가치창출 없이 의미 없는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할까? 또 그런 직업을 가지려는 대학생들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그를 바라보면서 내가 가지고 싶은 직업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임금에 구속된 노예로 살길 원하는 것은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동찬 기자  fort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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