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말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취재거부가 그것이다. 기자가 신문을 만드는 과정은 취재로 시작해서 취재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시작이자 끝인 취재를 거부당하거나 불성실한 답변만을 얻게 되니 당연히 아직은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필자는 잘했다는 칭찬과 수고했다는 공치사로 달래고는 한다.

기자에게 취재원의 취재거부는 참으로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시간을 고민해서 완성된 빈틈없는 취재계획도 취재원의 협조 없이는 휴지조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취재의 목적이나 의도를 거듭 설명해도 ‘잘 모르겠다’, ‘바빠서 다음에 연락해 달라’, ‘말할 수 없다’ 등의 거절만 돌아올 때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본다’는 속담을 뼈저리게 실감하곤 한다.

사실 편집국장의 업무를 수행하다보니, 역으로 취재원이 되어본 경험이 많아 취재에 응해주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는 알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항상 취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로서의 동병상련도 있겠지만 기자가 죄송함을 무릅쓰고 취재를 요청하는 이유를 알기 때문이다. 겉으로 봤을 때 기자가 취재를 하는 이유는 기사를 쓰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의 존재이유라는 깊은 의미에서 봤을 때는, 기사를 쓰는 이유는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다.

분명히 기자는 취재원에게 시간을 빼앗거나, 말하기 어려운 실수나 비밀을 드러내야 하는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취재를 요청하는 기자들도 항상 죄송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끊임없이 취재를 요청하는 이유는 취재원에게 안겨주는 불편함을 알지만, 취재요청이 취재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자신하기 때문이다.

취재원에게 10분 동안의 시간을 할애 받아 얻은 정보가 1만 4천 학우들의 지식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높일 수 있다는 자신. 취재원이 터놓고 이야기하기 불편한 실수를 캐물어 알림으로써 작게는 학내 구성원들의 환경을 개선하고 나아가 우리사회를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 그것이 있기에 <건대신문> 기자들은 철면피를 쓰고 취재원에게 불편함을 감수해 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학내 구성원들이 <건대신문> 기자들에게 흔히 갖는 오해 중 하나가, 비난하기 위해서만 취재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수많은 잘한 일과 한 가지 못한 일이 있을 때 기자들이 묻는 것은 한 가지 못한 일이니 이렇게 오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건대신문>의 편집국장으로서, 우리대학 한 명의 학우로서 부탁드린다. 더 나은 학내 구성원들의 생활, 우리대학의 발전, 사회의 정의를 위해 취재를 요청하는 우리들의 진심을 알아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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