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에 교환학생으로 다녀왔다”고 이야기 하면 눈빛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곤 한다. 호기심과 동경의 눈빛이다. 필자 역시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신청하고 면접을 볼 때는 교환학생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현지에 도착한 당시만 해도 그랬다. 그러나 과연 화려하기만 할까? 필자는 이 글을 통해 교환학생을 하면서 겪은 어려움들을 솔직하게 풀어보고자 한다.

물론 처음 한 달은 무엇이든 자신 있게 덤볐다. 그런데 쉽게 견딜 수 없는 어려움들이 끊임없이 닥쳤다. 하루하루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상대교 국제처 담당자와의 첫 만남과 첫 수업은 물론이고 목욕할 때 커튼을 치는 사소한 것까지도. 스위스에서의 일상은 마냥 멋진 것만은 아니었다.

스위스인들은 얼마나 폐쇄적인지 우리가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들마저도 그 정도에 혀를 내두르곤 한다! 또한 외국인 거주자에게 배타적인 편이어서 시내를 돌아다니다보면 10대 무리로부터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듣곤 했다. 게다가 필자와 함께 파견된 하나뿐인 우리나라 친구와는 감정이 안 좋아져서 답답하기도 했다. 서툰 언어로 수업을 듣는 것도 고달팠다. 행여나 교수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 날이면, 스스로가 부족하게 느껴져 골방에 홀로 앉아 눈물을 짜기도 했다. 지독히 혼자라고 느꼈기 때문에 점점 내면으로 침잠했다.

   
▲ 마지막 수업 후 교수님, 친구들과 함께
한 동안은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일정이 있는 날은 학교와 랭귀지 센터에 가면 되지만 비가 많이 오는 휴일은 난감했다. 공부도 독서도, 해외드라마까지도 애꿎은 시간을 가게 하진 못했다. 그럴 때는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왜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는지’ 등 참 여러 가지로 잡념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스스로 방어벽을 친 채 그나마 사귄 친구들을 더 깊은 관계로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외로움에 익숙해지고 나니 다시 사람이 그리웠다. 모국에서 근거 없이(?) 당당하던 나도, 타국에서 부족하게 느끼는 내 모습도 모두 어쨌든 ‘나’라는 걸, 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라는 걸 알고 나서야 점차 그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서운했던 친구와도 화해를 하고, 현지 친구들과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도 한결 자연스러워진 필자를 받아들였다. 마음을 열고 친해지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서툰 언어는 그다지 큰 벽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떻게든 말하려고 한 그 때 가장 언어 실력이 빠르게 늘었다. 그렇게 ‘동양에서 온 그 작은 여학생’이 자신을 마구 표출하려 할 때쯤 학기가 끝났고 귀국할 때가 다가왔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이 아쉽고 그립기만 하다.

워싱턴 미국 초대 대통령의 ‘기억하라. 우리는 어려울 때 가장 많이 성장한다는 것을’이란 유명한 말을 아는가. 필자의 교환학생 경험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만큼 더 내려갈 곳 없이 좌절했고, 그래서 올라갈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어쩌면 모든 유학생들이 겪었을 진부한 경험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그들에게도 가장 힘들지만 그리운, 묘한 경험일 거라고 확신한다. 아직 도전하지 않은 독자들께도 짓궂게 추천해본다. 그 고생, 한 번쯤 해 봐도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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