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보등록이 끝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 기간이 시작된 지난 9일, 이번에는 어떤 선거풍경이 펼쳐질지 궁금증과 기대를 안고 등교했다. 역시나 학내 곳곳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교문 앞에서 선거운동본부(아래 선본) 후보자가 밝은 모습으로 학우들을 맞고 있었다. 하지만 필자는 며칠 지나지 않아 씁쓸한 실망감을 안고 발길을 돌렸다.
필자가 실망감을 안고 발길을 돌린 것은 선거에 대한 선본과 후보자들의 진정성이 부족해보였기 때문이다. 걸린 현수막들은 당선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뤄내겠다는 다짐보다는 유행어를 통해 선거운동본부의 이름을 알리거나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말 일색이다. 홍보물을 통해 전달한 그나마 몇 안 되는 공약에서 진지한 고민이나 구체적인 실현계획은 엿보기 어려웠으며 심지어 아직 공약을 고민하지 않았다는 선거운동본부도 있다.
근 1주일이 지나자 현수막과 게시판을 통해 서서히 공약과 정책을 발표하고 정책자료집도 나왔지만 썩 마뜩치 못함은 여전했다. 학우들의 요구지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공약, 실현 가능성을 점쳐보지 않은 무책임한 정책 등이 곳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내년 5월, 2010지방선거를 앞두고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곳곳에서 매니페스토(manifesto)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제대로 된 공약을 제시하자’는 의미를 가진 매니페스토의 개념은 1834년 영국 보수당 당수인 로버트 필이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공약은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라면서 구체화된 공약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 기원을 둔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와 일본의 마쓰자와 시게후미가 매니페스토에 따라 구체적으로 정책을 명시해 선거에서 승리함으로써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06지방선거를 계기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리나라 선거의 고질병인 인물주의, 연고주의에서 벗어나 후보자들이 내세운 공약이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지 평가하자는 움직임에서 매니페스토 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매니페스토 운동의 진정한 의미는 선거운동본부와 후보자가 선거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것에 있다. 선거에 출마한 이유와 목표를 오랜 시간 깊게 고민하여 명확히 설정한 후보라면 그 공약의 실현가능성이나 완성도가 매우 높을 것임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제 학생회 선거에도 매니페스토 운동이 필요하다. 공약보다는 인맥과 파벌이 중시되던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선거운동본부와 후보자들은 학우들의 어려움에 공감하고 나아가 우리대학을 위해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매니페스토에 합당한 공약과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그럴 때야말로 진정으로 학우들을 위한 선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