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청심대(학우기고)
전적지 답사를 다녀와서
김홍삼(정통대ㆍ컴공4) | 승인 2009.12.09 15:57

흔히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무이한 분단국가라고 일컫는다. 1950년 민족의 참사인 6.25 한국전쟁 발발 이후 3년간 무수히 많은 민족의 피를 땅에 뿌리더니 53년 정전협정으로 인해 결국 비통한 분단의 현실을 맞게 되었다. 그러나 북한은 분단 이후에도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노려왔다. 수없이 많은 도발을 해왔으며 간첩과 무장공비를 침투시켰고 몇 번의 폭파공작을 감행하여 때로는 숱한 인명피해를 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러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는 대한강군 국군이 있었기에 지금까지도 이런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국군 수호현장의 최전선을 다녀왔다.
서부전선 일부를 수호하고 있는 제 1사단 전진분대가 맡고 있는 도라전망대는 실제로 북한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하는 곳이다. 생명의 냄새가 살아 숨 쉬는 생태의 보고, DMZ에 보이는 철새들과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 바로 눈앞에서 볼 수는 없지만 그 철새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꽃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졌다.

휴전선과 DMZ를 두고 마치 견우와 직녀를 연상케 하듯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북한의 기정동과 우리 대성동 마을의 평화로운 모습이 한 민족의 애끓는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웅장한 풍채를 자랑하는 개성의 심장 송악산과 금암골이 보이고 그 끝에 보이는 개성공단과 개성시 변두리의 모습을 보니 북한땅이 이렇게 가깝구나! 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기정동의 인공기와 멀리 보이는 김일성 동상이 위화감을 가져다주었지만, 정말 그곳은 멀지 않은 우리 땅이었다. 이렇게 바로 눈앞에서 우리 땅, 우리 조국을 확인할 수 있음에도 발을 딛을 수 없음에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졌다.

우리 땅을 확인한 가슴 벅찬 감동을 뒤로하고, 제3땅굴로 향했다. 땅굴이라 해서 한 두세 명 정도 기어서 통과하겠거니 했는데 실제로 보니 그 규모는 실로 장대했다. 그들이 적화통일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지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땅굴을 이용해서 1시간에 3만명의 병력이 통과할 수 있다는 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현재까지 발견된 땅굴은 총 4개. 김일성이 말하길 "핵폭탄 10개보다 한 개의 땅굴이 낫다"고 하였다.

이들의 적화통일 야망이 이 정도 규모의 땅굴을 파낼 수 있고, 또 그보다 더한 행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땅굴을 들어가니 음습함과 한기가 덮쳐왔다. 그들이 파내려 온 모습이 눈앞에 펼쳐질 정도로 그 흔적이 역력했다. 1600m를 넘는 굉장한 길이. 하지만 높이가 굉장히 낮은 것을 보니 그들의 신체조건이 매우 왜소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건장한 정신과 신체를 지닌 대한의 건아들이 그들에게 절대 밀릴 수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였다.

제 3땅굴 견학을 마치고 도라산역에 도착했다. 한반도 통일의 염원이 한 곳에 모여 있는 도라산역은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의 중심 맥이다. 물론 분단으로 인해 마지막 종착역이 되어버렸지만, 도라산역에서 철길을 따라 이어지는 북한 땅의 광경을 보니 마음이 미어졌다. 하루 빨리 통일이 돼서 철마가 마음껏 달리기를, 우리 한반도가 아시아를 넘어 유라시아 철도의 중심이 되기를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최종 목적지는 비극과 역사의 현장, 공동경비구역 JSA 및 판문점이었다. 들어가는 것 자체가 한 달 전부터 신원확인을 해야 하고 갈 때도 신분증을 지참하고 얼굴을 일일이 확인하는 등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만큼 군사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곳임을 들어가기 전부터 알 수 있었다.

우리 군과 미군이 주축을 이루고 UN군이 주둔하고 있는 JSA부대는 휴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위치에서 임무를 수행해왔고, 단지 돌 둔덕으로 나뉘어 있는 판문점에서 북한군과 대치하여 돌발 상황 및 민감한 사안에 대하여 서로 대처하고 있는 곳이었다. 절대 북한 경비병을 도발하거나 의심받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귀가 따갑게 주의를 들은 후 판문점에 입장하였다.

놀랍게도 가끔 등장한다는 북한 경비병이 등장하여 우리를 세심히 관찰하였다. 단장님 및 훈육관님이 입고 있는 근무복과 우리가 입고 있는 단복이 그들의 주의를 끈 탓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으나, 우리는 이내 의연하게 행동했다. 분명히 그곳에 있는 북한 경비병들은 북한군 내에서도 가장 체격이 건장하고 풍채가 당당한 인원으로 배치했을 텐데, 우리 경비병에 비하면 상당히 왜소한 체격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임관한 후 싸워야 할 대다수의 적은 우리가 배운 대로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백병전 시 우리가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다.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절대 두려워 할 이유가 없었다.

판문점 내에서는 돌 둔덕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땅을 밟을 수 있는 특수성이 있어 자유롭게 북한 경비병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는 장교 후보생답게 당당하게 사진촬영을 했다. 그렇지만 그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것을 대변해 주는 듯했다. 말로만 들어온 우리의 적 북한군의 모습을 두 눈으로 확인한 실로 소중한 기회였다.

비극의 역사, 그 현장에 갔다 온 느낌을 한 문장으로 말하자면 결국 그들은 항상 우리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북한은 급히 유화모드로 돌아섰다. 과연 유화모드인가? 세계정세, 그런 것은 아직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와 북한이, 그리고 세계가 평화모드가 되고 화해무드로 돌아설지언정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다해야한다. 우리의 임무는 조국을 수호하는 것이다. 절대 나라안팎의 분위기에 휘둘려 안보에 대해 단 일순간이라도 안일한 정신을 갖는다면 우리는 대한민국의 장교가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

우리에게 전적지 답사의 소중한 기회를 준 것은, 가서 보고 단순히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것임을 알고 있다. 피와 한이 서려있는 과거의 현장을 밟으면서, 나는 분명 아픔과 안타까움을 느꼈지만 이들이 노력해서 지켜내고 물려준 나라에서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바로 아름다운 내 조국을 굳건히 지켜 내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는 것이다.

김홍삼(정통대ㆍ컴공4)  kkpress@konkuk.ac.kr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홍삼(정통대ㆍ컴공4)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건국대학교 건대신문사
05029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120 건국대학교 학생회관 5층 건대신문사
대표전화 : 02-450-3913  |  팩스 : 02-457-3963  |  창간년월일: 1955년 7월 16일  |  센터장 : 김동규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동규
Copyright © 2020 건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