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상영회장에 들어서자 거의 300명에 달하는 중국인 학생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열기만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했지만 그들을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게 한 셈이라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며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의 입장을 환영해 주었고 먼저 와서 우리 팀의 작품을 기다리던 팀원들이 상기된 얼굴로 우리를 향해 미소를 보내주었다. 드디어 상영이 시작되었다. 몇 번이나 편집 본을 확인하면서 작업했지만 막상 큰 스크린에서 상영한다는 부담은 꽤나 큰 것이었다.

대학 3년을 다니면서 내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 줄 기회는 많았지만 타지에서 그것도 5일 만에 완성한 작품을 300명의 낯선 사람들에게 보여 준다는 것은 마냥 흥분되는 일만은 아니었다. 어떤 중국인은 한국 영화에 대해 별 기대를 안 할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한국에서 온 영화과 학생들의 수준을 자신들과 비교해 보려는 기대심리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기에 더 그랬다. 영화는 한국어와 중국어, 영어가 섞여 있는데 그런 혼란 속에서도 내가 생각한 타이밍에서 웃음을 터뜨려주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덕에 조금 안심이 되었다. 곧이어 중국인 연출자와 한국인 스텝이 제작한 두 번째 영화가 상영되었다.

 우리 팀이 만든 영화가 코미디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라면 다른 팀은 스릴러를 바탕으로 한 드라마다. 이렇게 철저하게 다른 분위기의 영화였기 때문에 반응 또한 달랐다. 시종일관 심각하게 영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 팀의 영화보다 더 진지하게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약간의 경쟁심리가 발동되기도 했다. 30여분의 짧은 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지자 박수가 터져 나왔고 우리 팀의 팀원들은 우리 영화가 낫다며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며 나를 치켜세워 주었다. 처음부터 경쟁이나 수상을 계획한 합작영화는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국가의 대표성을 띄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경쟁심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한국인 연출자의 작품이기 때문에 중국인 연출자의 작품을 응원할 수도 있음에도 우리의 팀을 하나로 생각하고 믿음을 보여주는 그들이 고맙기만 했다.

 다음은 쑥스럽지만 그들 앞에 나가서 영화에 대해 설명하고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다. 난 이 영화의 주제가 한국과 중국 양국의 화합을 ‘자장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드러내는 작품이라고 요약했고, 중국인 스텝들의 협조와 지원에 대해서 감사를 표시했다. 그들은 한국 영화과의 커리큘럼이나 장비에 대해서 궁금해 했고 시나리오 작법에 대해서 묻기도 했다.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으로 유학을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인지 한국의 교육환경에 대해 묻고 한국 영화산업 전반에 대해서도 질문을 했다.

그리고 우리 과의 교수님이기도 한 홍상수 감독님이나 <나쁜 남자>, <사마리아> 등을 만든 김기덕 감독님같이 해외 영화제를 통해서 널리 알려진 감독들의 영화에 대해서도 질문을 해 나는 으쓱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했다. 대부분은 영화의 짜임새가 좋고 짧은 기간의 촬영에도 불구하고 완성도가 높다는 데에 감탄했고, 적절한 소재로 화합의 메시지를 담은 점에 대해 감사를 표해주었다. 아무리 같은 학생들이라도 그들이 매를 든다면 겸허히 받아들이고 내가 인정할 수 없는 비판이라면 싸울 각오도 되어 있었지만 그들은 그저 환한 웃음으로 칭찬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공식적인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끝나고 나서는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기념촬영까지 요청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직 배울 게 천지인 내가 이렇게 과분한 대접을 받아도 되는 것인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껏 즐겨야겠다는 생각으로 웃으며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이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팀원들과 함께 그들이 소개해준 전통음식을 먹고 그 유명한 고량주에 한껏 취해보기도 하며 마지막 하루를 보냈다. 언어문제 때문에 마음을 터놓을 기회도 없고 그들의 이름을 정확히 부르는 것이 여전히 익숙하지 않았지만 이미 우리는 인간적으로 깊은 유대를 느끼고 있었다.

 마지막 날은 처음으로 굵은 장대비가 쏟아졌다. 그날부터 중경대학교의 기말고사 기간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은 대부분 시험을 보거나 공부를 해야 했음에도 우리를 배웅하러 숙소 앞으로 와 주었다. 빗속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 포옹을 해 가며 그들이 촬영 기간 동안 우리를 찍어준 사진과 개인적으로 준비한 기념품을 받았다. 너무 고마워서 인지 미안해서인지 한국에 온다면 두 배로 대접해 준다는 말도 안 되는 인사치레까지 해 가며 그들을 향해 꽉 차 버린 내 감정을 쏟아 내었다.

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 중경을 다시 오는 일이 내 인생에서 쉽지는 않겠지만 이 더위와 그들의 친절만큼은 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뜨거운 날씨를 이겨낼 수 있던 것도 더 뜨거운 친절과 믿음의 힘이 아니었나 싶다. 돌이켜 보건데 우리는 처음부터 중경지역이 전통적으로 한국인을 좋아하지 않는 혐한 지역이라는 것을 알았고 외교적인 혹은 여러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우리 또한 중국인들에 대해 좋지 않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미 공항에서 그들이 어설프게 써 놓은 한글과 환한 웃음을 보았을 때 이미 두 가지 걱정은 사라져 버렸고 일주일 내내 나는 한 번도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의 영화촬영이 내 영화적 감성 또는 기술을 얼마나 풍부하게 해주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이 서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있다. 언어와 편견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서로의 눈을 보며 진심을 다하여 신뢰를 표현하는 것. 이것만큼은 온 몸 구석구석이 다 반응 할 수 있도록 느끼고 익혔다는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는 추억 이상은 아닐 이 감정이 훗날엔 더 큰 재산으로 더 진정성 있는 삶과 작품을 조각하는데 토대가 되리라고 기대한다. 이런 기회를 만들어 준 영화과 송낙원 교수님과 동기, 후배들, 이 글을 볼 순 없겠지만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해 준 중국인 학생들의 진심에 감사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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