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5월도 하순이니 2달만 지나면 귀국하게 된다. 여름에는 지열이 창문을 통하여 그대로 들어오지만, 그 창문을 통하여 건대부고 옆의 커다란 포플러가 보이는 1층의 내 연구실이 벌써 그립다. 거의 날마다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수학과의 동료 교수들도 보고 싶고, 벌써 아무 과목이든 강의도 하고 싶다.

열 달 전, 안식년을 보낼 이곳 University of Michigan의 수학과로 올 때에는, 첫 번째 목적이 쉬는 것이었다. 한동안 아무 하는 일 없이 쉬고 싶었다. 96년인가 이과대학 수학과가 만들어 진 다음부터 작년까지는 정말 생각하기 싫은 기간이었다. 처음 만들어진 학과를 배려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며(사실 당시의 이과대 학장이었던 곽철영 교수님은 예외이다. 이상한 기회이지만 이 기회에 감사드린다).

거의 매년 새로운 교수를 뽑아야 하였고 새로 오신 교수들은 모자라는 인력을 몸으로 때웠으니 나도 피곤했지만 많이 미안하였다. 아마 내가 피곤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는지, 동료 교수들이 안식년을 신청하라고 나를 부추겼고 “에라 모르겠다” 염치 불구하고 안식년을 신청하여 현재 여기서 잘 지내고 있다. 작년 2학기에는 대교협의 수학과 평가가 있었을 터인데 그 일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바빴겠는지 짐작이 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식년 신청을 오히려 권유한 우리 수학과의 동료 교수들에게는 많이 미안하고 고맙다.

내가 함께 연구하기로 한, 아니 배우기로 한 Dan Burns 교수는 이곳에 온 지 넉 달 정도가 지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그때까지 Burns 교수도 안식년으로 MIT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조건이 나는 아주 마음에 들었었다. 나는 한동안 쉬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결국 넉 달 동안 잘 쉴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즐겁고 보람찼다. 하루에도 몇 개씩 있는 세미나 중에서 내 전공과 논문에 상관없이 재미있겠다 싶은 것만을 골라 듣는 재미가 솔솔하였거니와 그 동안 논문에 쫓겨 내 분야에만 관심을 갖느라 좁아졌던 시야를 다시 넓힐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도 ‘머피의 법칙’이 작용한 것인지 가끔은 내 전공분야가 궁금하기도 하였고, 그때마다 조금씩 시간을 내어 조그마한 논문을 완성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인 소위 SCI 논문은 될 것 같다.

Burns 교수는 기하학과 수리물리학의 여러 분야에 정통한,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저명한 수학자이다. 현재의 그의 관심사는 역학에 대한 수학 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Symplectic Geometry에 많이 치중되어 있는데, 나는 그가 주로 사용하는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는 H. Cartan 의 Equivalence Method를 그로부터 배울 수 있었다. 이 방법은 수학의 여러 분야에 걸쳐 유용하게 쓰이고, 그 유용함을 누구나 인정하지만 정작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수학자는 극히 한정되어 있는 방법이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중반 H. Cartan이 이론을 발표한 이래, 후대의 수학자들이 이 이론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거의 30년이 걸린, 매우 어려운 이론 중의 하나이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이 방법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을 뿐 이해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일주일에 한번, 한 시간 정도 그를 만나서 일주일 동안 내가 이해한 것을 그에게 이야기하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알려주면 그가 그 부분을 설명하여 주는 방식으로 나의 공부는 진행되었는데, 그를 만나 함께 이야기하는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은 정말 귀중하고 즐거웠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관점과 방법을 그는 그 시간을 통해 알려주었으며, 그때마다 나는 내가 쉬었던 약 4개월의 시간이 아까울 뿐이었다. 그렇지만 지금 나는 드디어 이 이론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친 심신을 회복할 만큼 쉬었고 또 그렇게 어렵다고들 하는 이 이론을 이해했다고 생각할 지경이 되었으니, 이곳에서 보낸 안식년이 나에게 매우 가치 있었음이 틀림없다. 이런 기회가 가능하게 해 준 학교 당국과 나를 채근했던 우리 수학과의 동료 교수들에게 다시 한 번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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