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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참 쓸쓸한 당신의 독 (1)2009 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건대신문사 기자 | 승인 2010.01.10 16:56

                                        참 쓸쓸한 당신의 독

                                                                                                박선영(문과대ㆍ국문3)

가끔씩 나는 언니가 살았던 그 쪽방을 떠올린다. 집을 나간 언니가 혼자서 잠에서 깨어나고, 멍하니 TV 앞에 앉아서 밥을 먹었을 그 방을. 앉은뱅이 밥상을 앞에 두고 앉은 언니의 웅크린 등과 그 등 뒤로 길게 늘어졌을 언니의 그림자를 그려본다. 이상하게도 나는 TV를 보고 있는 언니의 얼굴은 상상되지 않는다. 언니는 울고 있었을까, 웃고 있었을까, 아니면 엄마를 볼 때처럼 이도저도 아닌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언니를 떠올릴 때마다 언니는 내게 등을 보인다. 양수 속에서 웅크린 태아처럼 옆으로 누워 자는 언니도, 엎드려 일기를 쓰는 언니도, TV 불빛만이 비춰주는 창문도 없는 쪽방에서 밥을 먹는 언니도, 내 기억 속에서 언니는 모두 등뿐이다. 그런 언니의 어깨를 건드리면 고개를 돌리고 나를 바라볼 얼굴이 언니가 맞는지는 사실 확실치 않다. 다만 내가 언니라고 생각하는 그 등이 참 많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니 그 등이 꼭 언니가 아니라도 상관은 없다. 그런 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용서하고, 이해하고, 안아주고 싶어질 테니까.

휴게실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도, 나는 종종 언니의 꿈을 꾼다. 꿈속에서 언니는 언제나 엄마와 함께이다. 엄마는 입을 열지만 엄마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엄마의 입에서는 말 대신 바늘이 튀어나오고 , 언니는 바늘 쌈지처럼 그 바늘들을 온 몸으로 맞는다. 엄마의 바늘은 길이와 굵기가 다양하지만 어느 것 하나 빗나가는 것 없이 언니에게 박힌다. 그리고 언니는 달린다. 언니는 한 없이 멀어지고, 엄마는 그런 언니만은 따라가지 못한다. 엄마는 꿈속에서도 다리를 저는 꼽추다. 3살 때쯤 앓았다는 소아마비로 엄마는 한쪽 다리까지 전다. 다리는 새처럼 가는데 한쪽 등만 튀어나온 데다 어긋난 갈비뼈 때문에 엄마는 유난히 상체가 커 보인다. 어렸을 때는 가끔 다른 아이들의 엄마처럼 정상적인 몸을 한 엄마의 모습을 꿈꾸기도 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꿈속의 엄마는 등으로 짊어질 수 없을 만큼의 혹을 이고 있는, 걷지도 못하는 불구가 된다.

선잠이 든 나의 어깨를 엄지공주가 살짝 흔든다. 교대시간이다. 언니와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나갈 준비를 한다. 거울을 꺼내어 가발을 자연스럽게 손질하다가 립스틱을 덧바르던 입술로 나는 유리방이라는 말을 천천히 발음해본다. 유리방이라는 말을 소리 내어 내뱉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입술이 한데 모아졌다가 벌어지는 느낌은 마치 고여 있는 물에 생기는 파동 같다. 가슴 한구석이 순간 아릿해온다. 마음속에 있는 무언가는 종종 이렇게 출렁이고, 출렁이다가 흘러넘친다. 그 무언가에 대해 한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무언가를 독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누군가의 마음에 고여 있는 독이 출렁이며 내게 다가오고, 내 마음에 고여 있던 독, 역시 아무렇게 않게 흘러넘친다. 휴게실 문을 열고 나가면 엄마도, 언니도, 나도 모두 다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모두를 용서했고 모두를 용서한다.

나는 의자에 앉아 손님을 기다린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는 유리 건너편이 보이지 않는다.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서만 나를 볼 수 있다. 손님에게는 유리방이라는 말이 맞겠지만 내게는 거울 방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거울 속의 나는 사과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누가 봐도 백설 공주이다. 흑단 같은 검은 가발을 쓰고 하얀 파우더를 덧칠한 붉은 립스틱을 바른 백설 공주, 가슴이 파인 파란 블라우스와 짧은 노란 드레스를 입은 여자.

언제부턴가 어쩌면 거울이 백설 공주를 제일 사랑했거나, 제일 미워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백설 공주의 아름다움에 대해 거울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거울이 거짓말을 했더라면, 백설 공주는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거울은 끝내 백설 공주를 비추었고, 결국 백설 공주를 붙잡았다. 시간이 흘러 이곳에는 2000년대를 살아가는 백설 공주가 있고, 그런 백설 공주를 탐하며 더듬는 거울이 있다. 그리고 그 거울의 뒤편에 한때 한 남자가 있었다.

처음 그가 이곳에 왔을 때, 그는 울고 있었다. 나는 그를 볼 수 없었지만 소리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어쩌지 못해 새어나오는 흐느낌은 한없이 깊은 소리를 낸다. 어느 새벽, 모로 누워 들썩이던 언니의 등과 그 미세한 떨림처럼. 언니가 집을 나가고 난 후로 엄마 역시 그렇게 울었다.

그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는 멈칫한 채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다. 그저 바닥에 주저앉아 남자가 있을만한 곳을 한참 바라보았다.

-난 그쪽 못 봐요. 그러니까 대답해줘야 알아요. 만지는 거 까지 하면 5만 원이예요.

나는 천천히 옷을 벗으며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유리 밑에 구멍 있죠? 거기로 손을 집어넣어서 만지면 되요.

나는 구멍 앞으로 가슴을 내민다. 남자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린다. 발자국 소리에 서투름이 묻어난다. 조심스레 뻗쳐온 손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가슴을 움켜쥔다. 남자의 손은 축축했지만 따뜻했다. 마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의 손처럼 주물 거리던 손이 어느 새 안정이 되었는지 조심스럽게 꼭지를 건드리기 시작한다.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무언가로 젖은 남자의 손을 느끼며 나는 이 남자에게 만은 거짓 신음을 내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손님으로 오는 누군가에게 나의 연락처를 준 건 그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는 그 후로도 여러 번 내가 그를 잊어 갈 때쯤 내게 전화를 했다. 한 계절이 지날 때마다 남자는 내게 조금씩 그의 이야기를 해줬다. 선으로 만난 여자와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고 했다. 여자는 남자보다 8살이나 어렸다. 남자는 여자가 마냥 예뻤다고 했다. 결혼한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잠자리를 거부하는 아내가, 그저 아직 집을 떠나 지내는 것이 낯설어서 그러는 것이려니 했다고 말했다. 그날은 아내가 잘 먹던 과일을 사서 예정된 출장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그는 낯선 사내의 구두와 함께 침실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신음소리를 들었다.

-방으로 뛰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어.

남자는 그의 아내를 사랑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불이 켜진 거실에 앉아있는 아내가 그렇게 예쁠 수 없다는 남자의 목소리는 늘 젖어 있었다.

-나만 모른 척하면 괜찮아질 일이야. 난 더 이상 혼자인 게 싫으니까. 그냥 무작정 밖으로 나왔는데 유리방 이라는 간판이 보이더라. 여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 같아. 너 역시 만질 수는 있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지는 않아. 그래서 좋아. 길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넌 날 못 알아보잖아. 나 역시 널 봐도 모른 척 할게.

이곳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그녀를 미워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그녀를 마음껏 미워하고 나서 집으로 돌아가 다시 아무렇지 않은 듯 사랑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다른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며 아내를 미워하고 이것만이 유일한 복수인 남자였다. 그가 참아왔던 감정들이 그의 손으로 내게 흘러 들어왔다. 나의 가슴 외에는 그 어느 곳에도 손을 대지 않던 그의 공허한 손이 말하던 감정들은 결코 내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리고 모든 일들을 내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내가 이곳에서 모두를 용서했듯이, 그 역시 내게 모든 것을 조금씩 털어 놓음으로써 아내를 용서하고, 이곳에 모든 감정들을 두고 떠나려는 것이었다. 현실이 아닌 이곳에, 감정들만이 물결치는 이 공간에, 그는 마음속에서 출렁이던 그의 독을 모두 비워 버리고 떠났다. 누군가에게 독을 보일 수 있게 되면 그 독은 해독된다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모든 상처는 보이는 순간 낫게 된다. 곪는 것은 오직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상처뿐이다.

그를 떠올리는 것은 오랜만이다. 그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 날, 유리방을 나서면서 나는 그를 지웠다. 그러나 축축하고 따뜻했던 그의 손은 가끔 생각나곤 했다. 그의 손이 생각날 때면 나는 밤늦게 숨죽여 울던 언니의 축축한 손이 떠올랐다. 잡아 주는 것 말고는 아무런 따뜻한 말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언니에게 끝내 하지 못했다.

거울 너머로 두 개의 낯선 손이 들어왔다 나가고 나서야 내 일은 끝났다. 휴게실로 돌아와 가발을 벗고 화장을 지웠다. 이내 옷을 갈아입은 후, 문을 열고 계단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 본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3일장이 서는 시장 길은 장날이 아닌 날은 늘 한산하다. 그 골목 모퉁이 주차장 앞에는 붉은 컨테이너 박스가 있다. 사람들이 오고 가는 한쪽 면만 여닫는 새시로 된 5평 남짓한, 간판도, 전화번호도 적혀 있지 않는 그곳이 엄마의 수선집이다. 성격만큼이나 꼼꼼한 바느질 탓에 제법 입소문이 나서 ‘빨간 수선집’ 으로 통하는 엄마의 가게는 간혹 그 말로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있잖아 다리 저는 아줌마가 하는 데’ 라는 말만 덧붙이면 모두가 끄덕이는 그런 곳이다.

언니가 태어났을 때부터 수선집을 시작했다는 엄마는 늘 남의 옷을 줄이고 늘이는 일을 하지만 정작 나와 언니와, 엄마의 생만은 제대로 재단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나와 언니는 늘 재단 중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엄마의 작업대 위에는 집을 나간 언니를 제외한 나만 남아 있다. 나는 아직까지도 엄마의 수선집 일을 도우면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착한 딸이다.

문 여는 소리가 들리자 엄마는 잠시 손을 멈췄다. 멈칫 했던 재봉틀 소리는 이내 다시 이어진다. 엄마는 손에 잡은 꽃무늬 치마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말한다.

-늦었구나.

나는 엄마가 앉은 재봉틀 맞은편에 놓인 평상에 앉는다. ㄱ 자로 놓인 평상 옆에는 고쳐야할 옷들이 구겨진 채로 아무렇게나 쌓아올린 담처럼 솟아 있다. 삐져나온 잠바 소매의 시침핀 꽂힌 자리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나는 공부할게 많아서라고 대답한다.

-옷이 많이 밀렸네.

엄마는 이제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 대답이 없다. 매번 반복되는 대화와 반복되는 침묵인데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참 신기한 일이다. 가게 안은 엄마의 재봉틀 소리와 길 건너 식당에서 개업 선물이라며 가져다 준 시계의 초침소리만 반복된다. 규칙적인 두 개의 소리는 섞이지 못하고 조금씩 어긋난다. 재봉틀에게는 재봉틀의 시간이 있고, 벽시계에는 벽시계의 시간이 있고, 엄마에게는 엄마의 시간이, 나에게는 나만의 시간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방에는 무수한 시간들이 고정되어 있다. 방금 맡긴 것이 분명한 저 교복들은 내일 새벽 체육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등교 시간에 맞춰 찾아올 것이고, 꽃무늬 치마는 정육점 김 씨 아줌마가 모레쯤 곗날 입고 가겠다고 내일 저녁쯤 찾아오겠다고 했을 것이다. 나 역시 엄마의 방 어딘가에 엄마가 원하는 모습 그대로 고정되어 있을 것이다.

엄마가 재봉틀 사이로 옷을 밀어 넣을 때마다 엄마의 솟아오른 등이 올라갔다가 이내 내려온다. 움직일 때마다 엄마의 등은 도드라진다. 엄마는 그런 엄마의 장애를 인정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인정했기에 그러한 시선들을 더 견디지 못했다. 엄마와 길을 걷다가 조금이라도 엄마보다 늦게 걷거나 빨리 걷게 되면 집에 와서는 언니와 내게 병신과 같이 걷는 것이 그렇게 부끄러운 일이라면, 병신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도 부끄러운 일 아니냐며 몰아붙였다. 엄마는 엄마가 장애를 가졌기에 우리가 조그만 실수를 해도 ‘병신 딸이 뭐 그렇지’ 라는 말을 들을 거라고 말했다. 수선집 주문이라도 잘못 받아 논 날에는 ‘병신 몸에 기생하고 사는 멍청한 년’이라는 말이 그나마 양호했다.

독설이라는 말처럼 엄마의 독은 입으로 흘러나왔다. 언니와 나만이 엄마의 독을 느낄 수 있었다. 어느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엄마는 언니와 나 이외의 어느 누구에게도 독설을 내뱉지 않았으니까. 대외적으로 엄마는 불편한 몸으로도 열심히 사는 꼼꼼하고 친절한 수선집 아줌마였다. 엄마는 그렇게 자신의 독을 우리에게 내뱉음으로써 해독했다. 그리고 언니는 그 독을 견디지 못했다. 언니는 독을 가질 줄만 알았지, 그 독을 해독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언니 안에서 계속 쌓여만 가는 독은 결국 그 어느 누구도 해하지 못하고 언니에게만 병이 되었다. 언니가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풀어놓지 못하는 감정이 언니를 계속 잡아먹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언니를 잡아먹기 전에 언니는 언니에게서 도망가야만 했다. 언니를 아프게 하는 모든 감정으로부터 언니는 도망을 갔다. 언니가 이상해지기 시작한지 반년 정도 지나서였다.

건대신문사 기자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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