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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참 쓸쓸한 당신의 독 (2)2009 건대신문 문화상 당선작 - 소설부문
건대신문사 기자 | 승인 2010.01.10 16:58

어느 날부턴가 언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병치레하기 싫으니 병원에 다녀오라는 말로 엄마는 걱정을 대신했다. 병원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언니의 몸은 점점 쇠약해져 갔다. 다니던 일도 그만둔 채 언니는 방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언니는 알 수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고, 이유 없이 몸을 떨었다. 먼 친척뻘 되는 아주머니는 언니가 무병에 걸린 것 같다고 했고, 신 내림 받을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엄마는 ‘죽었으면 죽었지, 병신 딸이 무당 짓까지 한다는 말은 못 듣겠네.’ 라고 모든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어느 날 집에 돌아 왔을 때 언니와 내가 같이 쓰던 방 안은 빗소리 말고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언니의 옷을 넣어두던 옷장 한편이 텅 비어 있었다. 책장에 꽂혀 있던 책 두어 권, 같이 쓰던 책상 서랍에 들어 있던 언니의 일기장도 없었다. 짧은 소매의 팔뚝 위로 소름이 돋던 여름비가 내리던 어느 날, 언니는 그렇게 집을 나갔다.

-지금 울리는 게 니 핸드폰 아니냐. 미친 년 같이 어디다가 정신을 놓고 있는 거냐.

엄마의 새된 목소리에 난 그제야 주머니에서 계속 울리던 핸드폰 벨소리를 들었다. 시끄러운 재봉틀 소리에도 엄마는 종종 나보다 더 빨리 내 벨소리를 알아차리곤 한다. 어쩌면 엄마는 언니가 집을 나간 다음에도 나와는 계속 연락을 하고 지낸다는 사실을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모르는 번호가 뜬 것을 확인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엄마의 방에서 벗어났다. 언니는 종종 동네 공중전화로 전화를 하곤 했으니까.

언니에게 마지막으로 돈을 부쳐준 날짜를 되짚어본다. 지난달 초쯤이었으니 언니의 생활비는 거의 다 떨어졌을 것이다. 언니는 여전히 아팠다. 나는 집을 나간 언니가 당장은 아니라도 곧 신 내림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언니가 앓아누운 반년동안 지켜보는 나 역시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언니는 지금까지 미련하게 혼자 버텨내고 있었다. 엄마도, 언니도 서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음에도 그 질긴 연의 끈을 끊어내지 못했다. 결국은 그런 것이었다. 도망친 사람도, 보내준 사람도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서로 알고 있었다.

전화는 끊어졌다가 이내 또 울렸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고 그대로 멈췄다. 수화기 너머 남자의 목소리는 점심 식사를 주문하는 목소리처럼 담담했다. 언니가 죽었다. 이틀 전쯤 언니가 살던 쪽방에서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골목에서 뺑소니를 당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아직 목격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남자는 말을 이었다. 가로등마저 고장난지 오랜 동네라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해도 번호판확인은 힘들 것 같다고 했다. 그래도 정 원한다면 현수막을 걸어보라는 남자의 목소리는 쓰레기봉투들에서 나는 악취로 가득했던 그 골목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귀밑머리를 젖히는 바람처럼 무수한 전신주들을 스쳐 지났을 남자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한없는 가벼움에 나는 언니가 집을 나갔던 그날처럼 소름이 돋았다.

집에서 한시간정도 떨어진 낯선 동네, 그 골목 입구에 언니가 있었다. 언니가 집을 나간 지 일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엄마 몰래 하는 통화였는데도 언니는 마치 짧은 여행을 떠나 안부를 묻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언니가 사는 곳을 알려주었다.

-오랜만이네.

골목 어귀에서 만난 언니는 동네 토박이만큼이나 이미 그 골목 사람다운 모양새를 풍겼다. 동네 사람들 모두 불이 들어오지 않는 가로등 밑에 음식물 쓰레기를 알게 모르게 내다 놓는다며 언니는 한 손에 들고 있던 검은 비닐봉지를 내려놓았고, 나는 오랜만에 보는 언니가 조금은 낯설었던 것도 같다. 그 골목에서는 나만이 낯선 존재였다. 나는 쭈뼛거리며 언니를 따라 골목을 걸었다. 언니가 사는 곳은 칠 벗겨진 대문 안에 여러 세대가 같이 사는 쪽방이었다. 쪽방 안은 언니의 냄새로 가득했다. 치마를 입은 여자의 하체가 마치 땅으로 곤두박질 쳐진 것처럼 거꾸로 매달린 향수병이었는데, 향수 이름이 헤드 오버 힐스던가. 언니는 집에서도 종종 이 향수를 방향제처럼 방 구석 구석에 뿌려두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제야 언니를, 언니의 방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언니의 방은 좋게 말하면 간소하다고 말할 수 있었다. 화장대와 옷장, 냉장고 옆에 접혀진 앉은뱅이 밥상, 구석에 놓인 tv, 넘치는 것도 없으나 딱히 아쉬울 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언니는 나에 대해서 얘기했고, 나는 언니가 나가고 난지 일주일정도 지나고 나서 앓아누웠다가 일어난 엄마에 대해 말해 주었다. 언니는 언니와 내가 지내던 방에 대해서 물었고, 나는 세탁기에 있던 언니의 옷이 가지런히 세탁되어 들어간 옷장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언니는 더 말라있었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나는 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 그저 언니가 돈이 필요하다고 연락할 때마다, 나는 유리방에 나갔고, 그 곳에서 받은 돈을 언니에게 부쳐주었다.

나는 집을 나갈 수밖에 없었던 언니를 이해했다. 하지만 나를 혼자 남게 한 언니는 용서하기 힘들었다. 언니는 왜 나를 두고 그때도 지금도 말도 없이 떠나는 걸까. 또 이러한 언니의 죽음을 어떻게 엄마에게 말해야 하는지도 나는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언니가 집을 나가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엄마가 앓아누웠던 이유는 분명 일주일정도 지나면 언니가 다시 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엄마는 이제 영영 언니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까.

언니가 집을 나갔던 그날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언니는 내게 비가 내리는 것이 견디다 못해서 쏟아내는 하늘의 독기 같다고 했다. 참아야지, 참아야지 하고 계속 품고 있다 보면 모나지 않은 것들도 모나게 되고 독하지 않은 것들도 결국 독해진다고 한다. 괜찮겠지 싶어서 둬봤는데 어느 샌가 자신을 중독 시키고, 내가 너무 아파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누군가에게 토해내 버리고 후회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맑아져도 그거 다 시퍼렇게 멍든 자리라며 하늘이 파란 건 그래서 파란 거라고 언니는 말했다. 처음에는 언니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순간,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문장 하나, 하나, 단어 하나, 하나가 선명해지는 날들이 생겨났다. 가슴 밑바닥에서 시작된 찬바람의 들썩임이 점점 격렬해지다가 끝내 몸을 들쑤시는 느낌. 그럴 때마다 나는 참 많이 쓸쓸해졌다. 당신들이 품고 사는 독이 그 바람에 출렁이는 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서, 결국 가슴에서 소리를 내는 그 누구도 미워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영영 답을 모르고 살았다 해도 그리 나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언니가 집을 나갔던 그날도, 낯선 남자의 목소리로 언니의 죽음을 통고받고 있는 오늘도, 언니는 내가 언니를 미워할 수 없음을 알았던 걸까.

나는 도망치듯이 유리방으로 달려간다. 카운터에 있는 언니가 다시 온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나는 달음질쳐 휴게실로 들어간다. 사물함 키를 꺼내어 다급하게 사물함 문을 연다. 누군가에게 쫓기기라도 하듯이, 옷을 벗어 던지고 파우치를 꺼내어 화장을 한다. 스킨을 바르고 로션을 바르고 베이스를 바른다. 급한 손놀림 탓에 화장이 잘 스며들지 않는다. 조금 뜨지만 파우더로 얼굴을 두드린다. 입술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다. 이제 조금 안정이 되는 것 같다. 아이라인을 그리던 손이 헛나가 눈꼬리가 위로 올라간다. 재빨리 리무버를 적신 솜으로 아이라인을 지워버린다. 다시 아이라인을 그리기 위해 거울을 들여다본다. 파우더 가루가 날려 흐릿한 거울을 손으로 닦아낸다. 그리고 그 거울 속에 언니가 비춰 보인다. 나는 언니를 늘 봐왔다. 살이 빠지지 않았다면 언니는 이런 얼굴이었을 것이다. 앓아눕기 전에 언니와 나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오른쪽 눈 밑에 점뿐이었다. 아이라인을 마저 그린 나는 오른쪽 눈 밑에 점을 그려 넌다. 거울을 본다. 거울 속에 브래지어, 팬티차림으로 주저앉아 화장을 하는 언니가 있다. 흑단 같은 가발을 쓰고, 붉은 립스틱에 하얀 피부를 한 백설 공주가 된 언니가 있다. 언니는 휴게실 문을 열고 복도를 걷는다. 유리방 문을 열고 들어가 의자에 앉아 거울을 보며 손님을 기다린다. 문이 닫힌다.

다시 찾아간 언니의 방은 그대로였다. 창고 문을 잠그는 자물쇠로 고정되어 있던 언니의 방은 주인집 아저씨에게서 빌린 펜치로 쉽게 끊어낼 수 있었다. 어느 순간 생의 나뭇가지에서 툭 하고 굴러 떨어져 버린 언니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쉽게 자물쇠의 악다문 아귀는 떨어져 나갔다. 이가 맞지 않은 문이 삐걱거리면서 열리고, 얼마 되지는 않지만 나는 언니의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방 한 구석에 언니의 일기장이 보였다. 나는 방바닥에 주저앉아 천천히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겼다. 집을 나간 후부터 언니의 일기장에는 내가 보내준 돈의 액수와 날짜가 적혀 있었다. 내가 유리방에 나가고, 누군가에게 나의 가슴을 내어주어 얻은 돈을 언니에게 보내고, 아무렇지 않게 착한 딸로 돌아가는 방법으로 나의 독을 해독시켜왔음을 언니는 끝내 알지 못했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알았더라면 그것 역시 언니에게는 견딜 수 없는 독이 되었을 테니까. 언니의 독은 해독되는 법을 몰랐기에 나는 언니를 미워할 수 없었다. 언니는 늘 견딜 수 없이 쌓여가는 언니의 독을 다독이기에도 벅찼을 테니까, 왜 나의 독을 알아봐주지 못했냐고 언니에게 투정 부릴 수 없었다. 일기장의 마지막 줄에는 모든 페이지마다 카프카의 일기의 한 구절이 쓰여 있었다.

상처가 고통스러운 것은 상처의 깊이와 화농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괴로운 건 그 상처가 오래되었음에 기인한다. (1917년 8월 카프카의 일기)

일기장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언니와 나와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사진을 어루만지는 나의 손에 차가운 것이 떨어졌다. 언니의 방에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언니의 독과 엄마의 독과 나의 독이 한데 모여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금세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출렁임이 마치 양수처럼 나를 감쌌다. 나는 눈을 감았다. 참을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건대신문사 기자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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