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응원문화, 이렇게 변해왔다!

1982년 출범한 한국 프로야구가 올해 통산 관중 1억 명을 돌파했다. 한 시즌 관중 600만 시대를 맞이하여 그 규모가 커진 만큼 프로야구 관중도 계속 변화해왔다. 관중의 변화에 따라 80, 90년대에 비해 2000년대 이후 야구 관람ㆍ응원문화가 어떻게 변화했는지 알아보자.

지역주의는 프로야구 성장의 원동력
프로야구는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80년대에는 지역적 색채가 강해서 지역주의가 강한 중년의 남자 야구팬들이 주로 야구장을 찾았다. 이 당시 지방에서는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외에 즐길만한 여가문화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이들은 야구를 열광적으로 응원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호남인들에게 있어 야구는 정치적 소외와 울분을 달래는 창구였다. 그러나 이러한 지역주의는 부작용도 가져왔다. 특히 전라도 연고의 해태와 경상도 연고의 롯데나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과열된 관중들의 난폭한 행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6년 대구에서 열린 삼성과 해태의 경기 후에 승리한 해태팀 버스를 삼성팬이 불태우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야구발전연구원 장윤호 대표는 “과거 야구장의 주를 이룬 지역주의 의식이 강한 중년의 남자 야구팬들은 무조건 연고팀이 이기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 시기의 야구장에서는 중년의 남자 팬들이 소주병을 기울이고 고기를 구워 먹으며 야구를 보고 거칠게 응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단체응원보다는 개별적으로 앉아서 응원팀의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거친 언사와 함께 경기장으로 먹다 남은 닭다리나 소주병을 던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오늘 회식장소는 야구장, 메뉴는 치킨과 맥주
80년대 야구장이 지역주의를 강조하는 거친 남자들의 공간이었다면 90년대 야구장은 넥타이 맨 젊은 아저씨부대의 회식장소였다. 확 트인 야구장은 회사가 끝난 뒤 회사원들의 하루 스트레스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또 91년 이후 전문치어리더가 도입되고 지금의 4인 체제 치어리더응원이 93년도에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단체로 응원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이에 팬들의 응원을 유도하는 응원단장의 앞 응원석이 야구장 최고의 명당으로 자리 잡게 됐다.

점점 어려지고 예뻐지고… 야구장에 꽃이 피다!
2000년대 이후 시대가 변하면서 팬들도 변화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2009년 WBC 준우승에 힘입어 젊은 야구팬들과 여성팬들이 야구장으로 모여들었다. 그 결과 야구장을 찾는 관중유형이 연인, 친구, 가족 등으로 크게 바뀌었다. 과거 40, 50대의 중장년층이 주로 찾던 야구장을 이제는 10~30대의 젊은 층이 가득 채우고 있다. 박동희 야구전문기자는 “IMF 전후 등 90년대 후반, 야구를 멀리했던 젊은 층이 다시 야구장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에게 승리보다 재미를 달라!
승패에 집착하며 연고팀의 승리를 갈구하던 과거에 비해 지금 관중은 야구 자체와 응원문화를 즐기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자신의 지역연고와 상관없이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 팀이나 혹은 선수 자체를 응원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응원문구를 만들어 오기도 하며 다 같이 선수별 응원가를 부르며 응원한다. 또한 응원하는 팀의 유니폼을 구입하고 좋아하는 선수의 이름을 새겨 입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프로야구팀 SK의 서포터즈 비룡천하 이정우 회장은 야구장을 찾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좋아하는 팀을 응원하면서 여러 사람이 모여 맥주도 마시고 여가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 야구장에 가는 재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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