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학교에서 <영화로 철학하기>라는 교양과목을 담당한지 7~8년 쯤 되었다. 사람들은 내가 대학에서 <영화로 철학하기>를 강의한다고 하면 ‘무슨 영화를 보느냐?’고 제일 먼저 묻는다. 아마 그 어려운 철학과 영화를 접목시키려니 꽤나 진지한 영화를 볼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다. 가끔은 나도 답을 하면서 에이젠슈타인이나 히치콕을 들먹이며 ‘영화에 담긴 시대의 피끓는 사상이나 인간 내면의 심리를 강의한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1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2시간 남짓의 강의 시간에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서 철학적으로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주기에 고전영화는 그야 말로 ‘비효율적’이다.

그래서 수업시간에는 재미있는 영화를 본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데는 헐리우드를 따라갈 자가 없다. 애니메이션 <개미>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슈렉>, <마다가스카> 등을 만든 헐리우드 영화사의 작품이다. <개미> 이후에 <벅스 라이프> 등 곤충 관련 애니메이션이 줄을 이었으니 그 영향력은 어느 정도 짐작이 갈 것이다.

어느 영화든 보는 사람의 눈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그 사람의 성장 배경이나 교우관계,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 등이 동일한 영화에 대해 서로 다른 평가를 내리게 한다. <개미>도 마찬가지이다. 가장 평범하게 보는 눈은 ‘전혀 존재감을 갖지 못했던 개미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 성공하는 성장스토리’로 영화를 읽는다. 그러나 조금만 다양하게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면 이러한 시각이 얼마나 헐리우드 스타일에 길들여진 편협한 영화읽기인지 깨닫게 된다.

독재 권력을 쥔 멘디블 장군 개미가 수만 마리의 불량개미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한다. “왕국을 위해 없어져 버려”. 수만 마리의 개미들은 자신들의 몸으로 사다리를 만들어 위기를 탈출하려고 노력하지만 조금 길이가 모자라다. 가장 밑바닥에서 사다리를 받치던 주인공 개미 Z가 가장 위험한 맨꼭데기에 올라가 멘디블 장군에게 날린 한마디에 나는 주목한다. “우리가 왕국이야”. 개미 Z는 무소불위의 장군 주먹에 깊은 물 속으로 추락한다.

개미 Z는 전형적인 헐리우드의 영웅이 아니다.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전체를 꿰뚫어 보는 능력도 없거니와 혼자 힘으로 세상을 구원하지 않는다. 단지 자기 혼자 살려고 하지 않았으며 왕국의 동료들과 함께 살아서 탈출하고자 앞장섰을 뿐이다.

정치권은 총리인준 문제로 전쟁중이다.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노예인 사람은 없다고 하였으며 오직 ‘일반의지’에만 복종하라고 말했다. 이는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인에게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는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자동차 아까워서 관용차에 집식구들을 태우는 사람, 자신의 이익에 따라 공공정책을 세우는 사람은 애초에 일반의지에 복종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소인배일 뿐이다. 개미 Z처럼 왕국 전체의 이익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실천력을 가진 자가 바로 대의민주주의의 정치인일 수 있다. 그 정치를 이루어나갈 수 있는 자는 개미 Z와 그의 수만 마리 동료들이며,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또 중요하게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미래의 그 누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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