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의 이맘 때 쯤 일어난 9.11테러를 시작으로 테러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었을 당시,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악의 축’이라는 용어를 꺼냈다. 반테러 전쟁의 표적으로 이라크ㆍ이란ㆍ북한 등을 불량국가로 규정하여 위협의 제거를 위해 해당 국가의 정권 교체를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9년여가 지난 오늘의 결과는 어떠할까? 결과적으로 미국은 ‘악의 축’ 발언에 쓰디쓴 결과를 받아들고 뒤늦은 후회만 거듭하게 됐다. 직접적인 전쟁을 겪은 이라크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어버려 정상화는 요원하기만 한 채 아직까지도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다른 두 국가의 상황은 더욱 미국이 ‘악의 축’ 발언을 내뱉은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었다. 이란은 보란 듯이 핵 발전 프로그램을 개발하며 미국을 곤궁에 빠뜨리고 있다. 북한 또한 자력으로 핵무기를 개발,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하여 어찌 보면 미국이 이야기한 진정한 ‘악의 축’으로 거듭나게 됐다.

2010년, 우리나라 대학사회는 대학구조조정으로 시끄럽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해부터 학생 수 감소에 따른 경영위기를 언급하면서 부실대학 퇴출작업을 공공연하게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에는 퇴출 대학 명단을 공시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 행정조치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내부적 판단에 따라 자제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7일, 학자금대출제한대학 명단 공개라는 이름으로 기어코 30개의 부실대학을 발표했다.

물론 교육과학기술부에서는 학자금대출 제한으로 상환능력이 부족한 부실 대출자를 줄이고 대출 재정의 건전성을 높이려는 노력일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보다 노골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부실대학을 공개하려는 의도임은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부실대학의 공개는 가뜩이나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해당 대학들에게 사실상 사형선고와 다르지 않을 것이고, 점차 재정위기가 심각해지는 과정에서 폐교 혹은 통폐합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정책 자체도 논란의 여지가 상당하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부실대학의 공개는 되레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위험이 크다. 심리학에서는 사회제도나 규범을 근거로 특정인을 일탈자로 인식하기 시작하면 그 사람은 결국 범죄인이 되고 만다는 낙인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그리고 미국의 ‘악의 축’ 발언은 그것의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지금의 부실대학의 공개가 낙인효과의 또 다른 사례가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부실대학으로 소위 ‘낙인’이 찍힌 대학은 초기에는 개선을 위해 노력할 수 있겠지만, 그 노력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말 부실대학이 되어버리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것이다. 진심으로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들의 미래를, 그 안에 속한 대학의 구성원들의 앞날을 걱정한다면 대학구조조정의 올바른 방향을 다시 한 번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건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