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2시 중강당에는 22명이 착석했다. 예정대로라면 하반기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가 개회됐어야할 시간이다. 하지만 근 5년간 하반기 전학대회가 성사된 적은 2008년 단 한번 뿐, 이번 전학대회도 정족수 미달로 인해 도시락 잔치만 하고 무산될 가능성은 다분해보였다. 대표자들은 놀랄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도시락을 뜯고 있었다.

40분가량의 기다림 끝에 예상을 뒤엎고 109명의 재적대의원 중 60명의 대의원이 참석해 전학대회가 개회됐다. 물론 49명의 나머지 재적대의원 행방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개회선언과 서기임명 후 회의는 중앙기구 예ㆍ결산 및 활동보고 논의로 이어졌다. 그러나 논의 중 정통대 도영석(전자공4) 학생회장의 “총학생회 회칙 상 예산 및 결산 승인은 반드시 비밀투표로 의결해야한다”는 이의 제기로 중강당 전체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대표자들의 당황한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이제까지의 전학대회에서는 이 절차를 모두 무시한 채 예ㆍ결산안 인준을 박수로 통과시켜왔기 때문이다.

비상대책위원회(아래 비대위) 김무석(수의대ㆍ수의학2) 위원장은 “그럼 잠시 회의를 휴회하고 중앙운영위원회를 소집하겠다”며 회의를 진정시키려 했다. 하지만 이 때 정통대 우승정(전자공4) 비례대표는 “회의진행 용어를 살펴보면 회의를 잠시 중단하는 말은 휴게”라며 ‘휴회’라는 단어를 쓴 김무석 위원장에게 정문일침을 가했다. 이에 김무석 위원장은 “그럼 15분 정도 휴게를 하겠습니다”라며 말을 정정해야했다.

김무석 위원장과 우승정 비례대표의 갑론을박은 후에도 이어졌다. 총장 면담 보고 후 앞으로의 대응을 논의하던 중 김무석 위원장에게 우승정 비례대표는 “우리는 학생대표로써 이 자리에 와 있으므로 총장님이 아니라 총장이라는 호칭을 써야한다”며 또다시 단어를 지적 했다. 이에 김무석 위원장은 회의 끝까지 총장에 ‘님’자를 붙이지 않았다. 위원장의 한숨이 마이크를 타고 중강당에 퍼졌다.

회의가 무르익은 6시 39분, 착석인원은 46명으로 정족수 55명에 9명이 부족한 상황이 었다. 회의장에서 나간 9명의 행방이 묘연했다. 결국 김무석 위원장은 정족수 미달로 인해 또 다시 휴게를 선언하고 말았다. 동시에 떠나간 대의원들이 돌아오지 않을 경우를 걱정해 정족수 미달 시 휴회하고 며칠 뒤 전학대회 날짜를 잡아 다시 나머지 안건을 논의하지 않겠냐고 제의했다.

6시 55분, 현재 자리에 앉아 있는 대의원은 모두 54명이었다. 아직 한명이 모자라 개회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결국 7시 정각 55명의 대의원들이 모여 회의가 다시 시작됐다. 앞서 정족수가 모자라 의결할 수 없었던 안건이 드디어 표결에 붙여졌다. 결국 이 안건은 다음 전학대회로 넘어가는 것으로 의결됐다.

이후 한창 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는 한 사람이 포착됐다. 눈썰미 좋은 김무석 위원장은 그를 놓치지 않고 “생도 관장님 어디가세요?”라고 말해 대의원들의 시선을 생활도서관 관장에게로 집중시켰다. 앞서 자리를 지켜달라고 말했던 김무석 위원장을 뒤로 한 채 공병윤(이과대ㆍ물리2) 생활도서관 관장은 “대리인 맡겨놓고 갑니다”라는 한마디로 상황을 일축했다. 결국 김무석 위원장은 가지 말라는 말 대신 “위임장 작성 꼭 하고 가세요”라는 말과 함께 다시 회의를 진행했다.

회의가 거의 마무리 될 즈음에 이번 전학대회에 가장 큰 파란을 갖고 왔던 우승정 비례대표의 연설이 이어졌다. 7시 10분 우승정 비례대표는 단상 위에 올라가 “마음이 안타깝고 착잡하다”라는 말과 함께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하며 연설을 시작했다. 이 연설은 7시 26분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고 무려 16분 동안의 열변 끝에 마무리 됐다. 우승정 비례대표의 연설은 가칭 비민주적 총장 선출과 비민주적 이사장 연임에 대응하는 특별기구를 만들기 위한 논의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구 구성이나 목적에 관련 사항보다 기구의 이름을 짓는데 더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김무석 위원장은 “기구의 이름으로 비민주적 총장선출과 이사장 선출에 대한 대응, 괜찮나요?” 라고 물었다. 그러나 동아리연합회 송태헌(운사ㆍ08) 부회장은 “이사장이 비민주적으로 선출되지는 않았으니 그 부분은 빼는 게 어떻겠나?” 라는 다른 의견을 제의했다. 결국 몇 차례 의견이 오간 뒤 ‘비민주적 총장선출과 이사장 연임 반대’라는 명칭으로 결정됐다.

회의의 마지막 순서로 이제 방금 전 설립한 특별기구의 대표를 정하는 것만 남았다. 별다른 논의도 없이 특별기구의 대표는 이 기구의 설립을 제의한 정통대 도영석 회장에게 급하게 맡겨졌다. 그리고 그때 김무석 위원장은 “나머지 안건을 중운위로 넘기는 것 표결하기 전에 돈좋은날에 뒤풀이를 예약해 놨으니 참가인원을 알려주세요”라고 발언했다. 이 말이 끝나지 마자 “예문대 9명 갑니다”라는 재빠른 답변이 날아왔다. 돈좋은 날에 밥 먹으러 갈 생각에 감사위의 발언은 바로 중운위로 넘기기로 결정, 학생대표들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워진 채 2010년 하반기 전학대회는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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