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문화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형부, 뭐해요?”


그제야 형부는 처제 왔냐며 인사를 머쓱하게 하고 언니도 아는 체를 한다. 굳이 바닥에서 엉덩이를 떼게 하고 싶지 않아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왔더니 둘 다 내가 온 것도 모르고 각자 도마질과 텔레비전에 집중을 했나 보다. 손에 들린 깻잎 튀김이 생각이 나 식탁에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언니는 여전히 재미없는 개그프로에 정신이 팔려있다. 그 큰 덩치에, 댕강한 앞치마가 참 어울리지 않는 형부의 뒷모습이 하도 낯설어서 난 식탁에 앉아 한참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형부가 내 눈빛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깻잎 튀김을 의식했는지 먼저 말을 걸었다.
“튀김이네.”
“네. 오늘 식용유를 새로 샀더니 새 기름을 좀 쓰고 싶은데 마땅히 할 게 없고 냉장고에 깻잎이 좀 있기에 튀겨봤어요. 이따가 언니랑 맥주 마시면서 안주로 먹어요. 근데 형부 뭐 만들어요?”
형부는 수줍게 양파볶음밥이라고 말했다.
“웬 양파볶음밥이요?”
난 형부의 뒷말을 끊고 바로 받아쳐 되물었다. 양파볶음밥이라는 요리의 제목이 궁금하기 보다는 형부의 그런 모습의 연유가 궁금했던 것인데 형부는 전자로 알아들었다.
“오늘 점심시간에 잠깐 잡지를 보는데 양파볶음밥 레시피가 나오더라고. 그게 어렵지도 않고, 또 양파가 몸에 오죽 좋아야지. 노화도 방지해주지, 철분이랑 칼슘도 많지, 혈액순환도 도와주지, 변비에도 좋지, 성장호르몬도 촉진해주니까 소연이한테도 좋지, 그거 뭐지? 그래 이뇨작용도 도와줘서 신장 기능에도 좋대. 아 그리고 기억력도 증진시킨대. 처제도 양파 많이 먹어. 양파 이거 보물이더라고 보물, 얕봐서는 안 돼. 그래서 양파 볶음밥 만드는 거야. 처제도 처남이랑 여기서 저녁 먹을래? 2인분 금방 만들어.”
양파 홍보대사가 따로 없다. 아니 완전 장사꾼이다. 필요한 말 아니면 잘 하지 않는 형부가 양파이야기에 이렇게 열을 내며 주구장창 말을 잇는 것이 나는 정말 이상했다. 유난히 친구에 죽고 사는 형부니까, 아무래도 형부 친구가 양파 농장을 경영하거나 양파 관련 사업을 하나보다. 라며 결론 지어버렸다.
“아니에요. 지태씨가 오늘 참치김치찌개 먹고 싶다 해서 그거 하려고 다 사 왔는걸요. 싱크대에 다 펼쳐놓고 왔어요. 얼른 가서 해야죠.”
형부는 외출했다가 주방에 가스 불을 켜놓은 채로 나왔단 사실을 이제야 상기한 주부처럼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처제. 처제. 그거 할 때 말이야. 참치는 기름을 빼야 그 찌개 국물 맛이 담백하다구. 체 있지. 체에다가 참치를 담아서 손으로 꼭 짜버려. 처남 요즘 배나오는 거 같더라. 기름은 안 먹을 순 없고 최대한 적게 먹어야지. 알았지?”
정말 이상하다. 형부의 친구가 양파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언제부터 형부가 요리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원래 그랬던 것을 모르고 있었던 건지 난 형부에게 간다는 말을 하고 나가는 길에 언니 옆에 쪼그려 앉아 조심스레 물어봤다.
“언니.”
언니는 텔레비전에 빠질 대로 빠져 날 쳐다보지도 않고, 빨리 할 말 하고 가라는 듯 왜냐고 기계적으로 답했다.
“형부 말이야. 좀 이상해. 형부 원래 요리 좋아했나? 아님 오늘 무슨 날이야?”
“아 몰라. 요즘 들어 저렇게 요리하고 싶어 안달이 나셨네. 나야 좋지 뭐. 깻잎튀김 가져왔다며 잘 먹을게. 내일 백화점 세일 가는 거 안 잊었지? 소연이 학교 보내고 문자할게.”
그렇게 텔레비전에 몰두해놓고는 어느새 깻잎튀김이란 단어를 들었는지 언니는 건성으로 하지만 자기 할 말을 다하고는 또 언제 개그맨이 하는 대사는 들었는지 혼자 깔깔대며 웃느라 정신이 없다. 난 아무래도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뭐 어떻게 할 도리도 없어 그냥 돌아가서 참치김치찌개를 했다. 형부가 가르쳐준 방법대로 하니 기름기가 눈에 띄게 줄고 훨씬 담백했다. 지태씨는 그 기름기가 바로 참치김치찌개의 백미라면서 다시는 그런 번거로운 짓 하지 말랐지만.

이모 저 다음 주에 수련회 가요♡
여우같은 계집애, 용돈이 필요할 즘이 되면 저렇게 문자로 시키지도 않은 예쁜 짓을 한다.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숙제하랴 공부하랴 우리 가족 중에 가장 바쁜 소연이는 굳이 저렇게 문자를 보내며 용돈이 달라고 호소한다. 조그만 게 벌써부터 세상 살 줄 아는 것이 작든 크든 돈을 쥐어주면 꼭 이모위해 샀다며 엽서 한 장이라도 사오니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다. 보나마나 학원에 박혀 있을 소연이를 위해 격려의 글자를 몇 개 적어 만 원짜리 두 장과 함께 봉투에 넣었다. 어제 산 머루포도 두 송이도 봉투와 함께 챙기고 언니 집으로 향했다. 언니는 반상회에 간 모양이었다. 형부는 혼자 영화 노팅힐을 보며 빨래를 개키고 있었다. 노팅힐은 휴 그랜트의 광팬인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였다. 언니가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는 DVD 영화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형부는 액션영화팬인데, 그래서 둘이 연애 시절 영화 보는 것 때문에 갈등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알고 있는데, 이상한 노릇이었다.
“형부, 노팅힐 좋아해요?”
“응. 이거 지금 다섯 번 넘게 보는 거야. 옛날에 이런 로맨틱 코미디는 영 별로였는데 요즘은 재밌네. 특히 이 영화 아주 재밌어. 저것 봐. 휴 그랜트 부끄러워하는 거, 얼마나 떨리겠어. 톱스타가 자기 가게에 온 것도 모자라 키스하고 가니까. 아유, 생각만 해도 설레지.”
난 무엇보다 형부의 ‘아유’라는 감탄사가 너무 여성스러워 머루포도를 떨어뜨릴 뻔 했다. 소연이 책상위에 봉투를 놔두고 형부와 함께 포도나 몇 개 뜯어먹고 갈 심산으로 부엌으로 갔다.
“처제 왜?”
형부는 자신만의 영역에 불쾌한 이방인이 출입이라도 했다는 듯, 약간은 못마땅하다는 어조였다.
“머루 포도 좀 가져왔거든요. 씻어서 먹을려구요. 트럭 아저씨가 당도가 되게 높다고 엄청 칭찬을 하기에 빈말인줄 알았는데 정말 달더라고요. 금방 씻고 내어갈게요.”
“포도? 포도 있지. 거기 아래 칸에 밀가루 있어. 밀가루를 좀 흩뿌린 다음에 흐르는 물에 씻으면 거기 남아있는 농약까지 말끔히 없어진대. 그렇게 씻어봐.”
나는 약간 기분이 상해버렸다. 형부의 잔소리에서 시어머니의 잔소리가 중첩되었기 때문이다. 언니의 일거수일투족마다 이런 식으로 간섭을 한다면 그것은 문제의 소지가 충분히 있었다. 갑자기 언니가 너무 보고 싶어졌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전화상으로 형부의 칭찬만 주구장창 늘어놓던 언니였다. 형부가 시키는 대로 포도를 씻어 내어갔다. 살펴보니 형부의 빨래 개키는 솜씨가 예사가 아니었다. 저 정도면 생활의 달인 빨래 개기 편에 나가도 될 정도였다. 눈은 텔레비전 화면에 고정되어 있으면서 손은 로봇마냥 자동적으로 빨래를 각까지 맞추어 개고 있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우와, 형부 빨래 개는 거 달인이네요 달인.”
남의 부엌에 출입한 사실을 사과라도 하는 양, 나는 더 과장되게 형부를 빨래 개는 소소한 일로 추켜세웠다.
“형부, 대체 언제부터 빨래개기 했던 거예요? 주부 18년차인 언니보다 형부가 백배는 더 잘하는 거 같아요.”
의외로 형부는 나의 칭찬에 몹시 기뻐했다. 마치 가요프로그램에서 처음 일위를 해본 신인 가수처럼.
“나 얼마 안 되었어. 나 정말 잘 개? 그게 저번에 옷을 입는데 조금 잘 못 개졌었나봐. 러닝셔츠에 갠 자국이 비뚤어져 있더라고. 그래서 옷장 서랍을 한번 확인하는데 소연엄마가 옷을 개긴 하는데 그게 잘은 못 개더라구. 어떻게 된 게 다 조금씩 비뚤어져 있어. 각도 안 맞고 말이야. 그래서 내가 다 끄집어내서 다시 다 개었는데 그게 되게 보기 좋더라구. 막 뿌듯하고 그래서 그때부터 빨래는 내가 개기로 했어. 소연엄마도 좋아하고. 서로 좋지 뭐.”
형부는 쑥스럽다는 듯이 빨래를 개게 된 연유를 말하며 능수능란하게 브라자까지 와이어가 상하지 않게 개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는 척 하였지만 나는 속으로 우리 지태씨는 이러지 않기를 바라며 소파에 누우려는데 발에 뭔가가 찔려버렸다.
“엄마야!”
지태씨 따라 교회를 다니면서 이제 무서울 때나 놀랄 때나 기쁠 때나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를 찾아보려고 애쓰지만 내게 더 가까운 사람은 하나님보다도 엄마인가 보다. 이번에도 엄마를 찾고야 말았다. 형부가 토끼눈이 되어 나를 돌아본다.
“어, 어, 내 십자수!”
형부는 나의 발보다 자기 십자수가 더 걱정이 된다는 듯 십자수를 들고 생채기가 난데는 없는지 요리 조리 살피고 있었다. 난 형부의 ‘내 십자수’가 황당해 그게 형부의 십자수냐고 되물었다. 이미 바늘에 찔린 내 발은 내게도 형부의 ‘내 십자수’보다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다.
“응 나 요즘 십자수해. 이거 내 핸드폰 번호인데 이거 해서 차 앞좌석에 붙여 놓을려고. 우리 팀 미스한이라고 있는데 미스한이 이거를 해놨는데 참하고 예뻐 보여서.”
“십자수는, 언니도 잘 하잖아요.”
“응 소연엄마도 잘하지, 근데 내가 하고 싶어. 소연엄마는 잘 하긴 하는데 뒷면이 깨끗하지가 않아. 내가 한 것 봐봐. 깔끔하지? 매듭을 짧게 묶으면 이렇게 되는데 소연엄마는 그게 좀 힘든가봐.”
아무리 생각해도 형부가 이상하다라는 말만 계속해서 되뇌고 있는데 형부가 덧붙였다.
“다음 주 소연이 수련회 가는 거 알지? 처남이랑 우리 집 와서 자. 그날 새벽에 우리나라랑 독일이랑 친선축구도 있잖아. 맥주 마시면서 오랜만에 놀아보자. 알았지?”
안 그래도 소연이 문자 받고 어른 넷이서 술판을 벌이겠다 싶더니 그렇게 되었다. 그러겠노라고 대답을 하고서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 반상회가 끝날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빨래를 개키고 십자수 땀을 놓는 형부의 이상한 모습을 언니와 함께 목격하기가 왠지 싫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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