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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부와 그녀 ③2010 문화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건대신문사 | 승인 2010.12.10 02:12

소연이가 이천으로 수련회를 간 그날 밤, 언니네 집에서 우리는 모두 한데 어우러져 맥주파티를 벌이기로 했다. 지태씨와 맥주며 육포며 쥐포를 양손 가득 사들고 언니 집으로 올라가자 언니는 어김없이 텔레비전 앞에서 심야 개그프로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뒤쪽으로 소파에 나란히 앉은 우리 부부도 덩달아 개그프로를 보며 히죽대고 있는데 형부가 샤워를 마치고 내 옆에 앉았다. 형부에게서 나는 상큼한 과일향이 나의 후각을 와락 자극했고 나는 소시지 냄새를 처음 맡아본 강아지 마냥 킁킁댔다.
“처제, 냄새 좀 맡아봐.”
형부는 언뜻 보기에도 부담스러울 정도로 튼실한 자신의 팔 근육을 내 얼굴 앞에 들이댔다. 형부의 운동선수 같은 팔에서는 상큼하다 못해 신선한 자몽향이 났다.
“이거 냄새 너무 좋지 않아? 바디용품 점에 갔다가 향기가 너무 좋아가지고 내가 어제 사왔어. 너무 좋지?”
형부는 이제 오십을 갓 넘긴 남자답지 않게, 아니 그냥 형부답지 않게, 사춘기 소녀처럼 향기 하나에 감동을 받으며 몹시 행복에 겨워했다. 그리고 심야 개그프로에 혼을 뺏긴 언니와 지태씨는 그런 형부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고 나의 심기만 공연히 편하지 않았다. 어느새 형부는 안방에서 손거울과 미용세트를 들고 나와 눈썹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태씨의 옆구리를 콩콩 쑤시며 형부 좀 보라는 암호를 보냈고 지태씨는 마시던 주스를 뿜었다.
“아니 형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형부는 작은 손거울에서 두 눈을 떼지 못한 채 집중을 하느라 인중을 있는 대로 늘이고서는 입술을 모아 오물조물 말했다.
“눈썹 정리하잖아.”
“아 형님, 그건 저도 알죠. 그런데 형님이 눈썹정리 왜 하는겁니까? 어디 살롱이라도 나가십니까?”
“처남, 요즘은 자기관리 시대라구.”
눈썹 칼이 다녀간 형부의 눈썹은 여자연예인 눈썹처럼 맵시 있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깔끔했다. 말을 끝마친 형부는 거울과 눈썹 칼을 지태씨에게 주며 눈썹정리를 권했다. 다행스럽게도 지태씨는 그것을 정중히 사양했다. 언니는 뒤에서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아까보다 더 텔레비전에 가까이 앉아 못생긴 개그맨의 슬랩스틱 코미디에 아낌없는 웃음으로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형부의 손에 들린 것은 이번에는 네일푸셔였다. 설마 했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형부는 천연덕스럽게 자신의 손톱 밑의 큐티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난 또다시 지태씨의 옆구리를 콩콩 쑤시며 형부 좀 보라는 시늉을 했지만 지태씨는 그냥 내버려두고 텔레비전이나 보라는 시늉으로 나의 신호를 되받아 쳤다. 형부의 충격적인 행동들을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이상한 느낌이 강해, 나는 형부가 화장실을 간 틈을 타 언니를 불렀다.
“언니, 형부가 좀 여성스러워진 것 같지 않아?”
“응? 그치? 너도 좀 그렇게 생각하지?”
언니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지만 심각하게는 받아들이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흥분해서 형부의 변화의 심각성을 말하려는 순간 언니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 주연아, 원래 남자들 좀 늙으면 여성호르몬이 나와서 여성스러워진대. 그래서 그런걸 꺼야. 그리고 난 소연아빠가 여성스러워져서 너무 좋은데? 설거지도 알아서 해주고, 요리도 해주고, 마음 잘 맞는 동성친구같아. 옛날에 내가 소연아빠 무뚝뚝하다고 얼마나 속상해했는지 기억나지? 지금 그거 다 만회하는 느낌이라서 난 좋기만 해. 그러니까 괜히 형부한테 뭐라하지마. 예전처럼 다시 돌아가는 것보다 난 지금이 훨씬 좋으니까.”
언니는 오히려 내가 오버하고 있다는 듯이 똑 부러지게 자신의 말을 끝냈다. 그래도 이건 뭔가 아닌 것 같다고 말을 하려다가 지태씨가 웃는 소리에 언니도 함께 웃기위해 텔레비전으로 고개를 돌렸고 그리고 때마침 형부도 돌아왔기에 난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곧이어 축구중계가 시작되었고 우리는 때때로 건배를 하며 육포와 캔 맥주를 씹고 들이켰지만 내 마음 한편의 이상한 느낌은 쉽게 들이켜지지가 않았다. 언니는 맥주를 마실 때면 평상시보다 용량이 눈에 띄게 작아지는 방광을 원망하며 화장실을 들락거렸고 나도 언니의 동생답게 엉덩이가 가벼워졌다. 언니와 나의 소변 타이밍이 같을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장실 앞에서 언니를 잡고 물었다.
“언니, 그런데 말이야.”
“응? 지금 후반전 시작했잖아. 빨리 말해. 뭐?”
“아, 그게 그러니까. 그래 그게 그러니까, 언니 형부와의 밤일은 문제없어?”
언니는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이 맥주로 인해 달아오른 내 볼을 꼬집으며 답했다.
“너 설마, 형부가 예전보다 여자 같아졌다고 지금 이러는 거야? 아까 말했잖아. 원래 남자는 나이 먹으면 다들 여성스러워진대. 네 남편도 이제 곧 그럴 거야.”
“그래도 그 정도가…….”
“형부가 젊었을 때는 남성호르몬이 너무 많이 나와서 이제 여성호르몬도 많이 나오는가보지 뭐. 우리 섹스 문제없어. 둘 다 너무 만족해. 할 때마다 황홀해 죽어. 됐어?”
장난기가 조금 섞이긴 했지만 너무나 자신만만한 언니의 대답이 나의 걱정을 쓸데없는 것으로 여기게 만들어준 것만은 확실했다.

추곤(秋困)증이 도래했다. 지태씨를 회사에 보내고 설거지하고 집안 한 바퀴 청소기를 돌리고 나니, 커피 한잔도 못 마셔 보고 거실에 대자로 누워 나른한 가을 햇볕에 잠이 들어버렸다. 계획 없는 낮잠은 때때로 밤잠보다 더 농도가 짙다. 이것이 꼭 잠에만 국한되는 일은 아닌 듯하다. 계획 없는 사랑은 때때로 치명적일 정도로 뜨겁고, 계획 없는 지출은 때때로 입이 벌어질 정도로 출혈이 크다. 어쩌면 우리는 계획 없는 무언가를 대비해 계획하며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계획이 없다는 것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감당할 수 없는,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스스로 감당하고 있는 무언가일테니 말이다. 정오 즈음에 누운 나는 해가 질 무렵에서야 언니에게서 온 전화벨 소리에 겨우 깨어났다.
“주연아. 우리 소연이가 드디어 해냈다!”
언니의 목소리는 기쁨에 들떠 두 옥타브는 가뿐히 올라가 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소연이가 외고에 합격했음을 알아챘다. 찰나사이에, 잠긴 목소리를 태나지 않게 깨워 언니의 옥타브에 어깃장을 놓지 않을 만큼의 고음을 만들어냈다.
“어머, 언니! 우리 소연이 외고에 합격했구나? 너무 잘됐다. 언니. 내가 그놈의 계집애 해낼 줄 알았다니까. 조그만 게 얼마나 야무지게 다 알아서 잘 하는지, 언니는 정말 딸 거저 키운 줄 알아. 똑똑하지, 말 잘 듣지, 착하지. 너무 너무 잘됐다 언니!”
언니의 호들갑까지 다 떨어주는 내가 기특했는지, 아니면 자기 딸 칭찬을 자기보다 더 현란하게 해주는 내가 기특했는지, 아니면 그저 소연이의 외고 합격이 좋아 죽겠는지 언니는 고상한 사모님처럼 소리 내어 웃기만 했다.
“우리 파티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소연이 아웃백 좋아하잖아. 거기라도 가자.”
“그럴까? 내친김에 오늘이라도 할까? 너 권서방한테 연락해봐. 소연아빠도 아마 시간 될 거야. 오늘 일찍 들어온댔으니까. 그리고 우리 소연이도 곧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이구.”
언니와의 통화가 종료된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우리 모두는 아웃백에 앉아 있다. 소연이의 그간 체력적 심리적 노고는 작은 얼굴에 뽕뽕 솟아있는 여드름이 고스란히 말해주었다. 구체적인 꿈이 아닌, 학벌이라는 아무것도 아니면서도 아무것인 것과 싸우는 소연이가 안쓰럽고 씁쓸하긴 했지만 소연이의 두 볼에 퐁당 들어간 보조개와 빛나는 두 눈은 는 모든 시름을 망각하게 해줄 정도로 말랑말랑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소연이는 메뉴판의 영어로 된 설명 중 모르는 단어가 없나 확인하고 있었고 언니는 어떤 요리를 시켜도 상관없다는 듯 건성으로 메뉴판을 넘기며 미리 나온 빵을 먹고 있었고 지태씨는 스마트 폰으로 주식을 확인하느라 바빴고 형부만이 꼼꼼히 메뉴판을 정독하고 있었으며 나는 이 네 명을 흐뭇하게 관찰하고 있었다. 형부는 자신을 제외하고 나를 포함한 네 명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아무도 메뉴에 별 관심이 없음을 깨닫고 자기가 마음대로 시켜도 되냐며 물었다. 그리고 우리 넷은 모두 그러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기요-”
형부의 중저음이 알바생의 고막을 건드렸고 20대 초반정도로 보이는 친절한 알바생은 인형이 달린 모자를 흔들며 다가와 무릎을 꿇고 펜과 메모지를 꺼내 주문을 받을 준비를 하였다.
“네. 주문하시겠어요?”
미소년 티가 나는 알바생은 목소리에서도 어린 티가 다분히 묻어나왔다.
“일단, 여기 브레드 찍어먹게 허니버터랑 라즈베리 시럽 좀 주시구요. 아 초코시럽이랑 블루치즈도 있죠? 그것도 좀 같이 주시구요. 가을 한정메뉴 세트 A랑 투움바파스타랑 베이비 빅립 주세요. 세트메뉴에서 나오는 수프는 1200원 추가 할테니 그린 샐러드로 바꿔주시고 거기에 텐더두개 추가해주세요. 머스타드 소스도 뿌려주시구요. 치킨 브레스트도 하나 얹어 주세요. 음료는 시럽 빼고 얼음 빼고 키위랑 파인애플로 주시구요.”
교과서를 줄줄 읽는 아이마냥, 아니 대형 마트에서 계산기를 두들기며 가격비교를 하는 짠순이 아줌마마냥 50대 형부는 메뉴판에 나와 있지도 않은 것을 쉴 틈 없이 요구하고 추가했고 그 많은 요구사항을 20대 알바생은 하나도 빠짐없이 적느라 절반정도는 혼이 나가 있었다. 나와 지태씨는 그런 형부가 어이가 없어서 넋을 놓고 바라보고 있었고 언니는 형부가 의아하면서도 알뜰하게 주문하는 게 기특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나는 딸기 에이드로 해주세요.”
소연이가 형부의 까다로운 주문의 맥을 보기 좋게 끊어 보았지만 형부는 딸기에이드의 딸기는 냉동딸기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키위가 좋을 것이라는 말로 조금의 여지도 없이 거절하고 다시 주문을 이어나갔다.
“립의 사이드 메뉴는 감자튀김으로 해주시고 거기에는 치즈를 얹어 오지치즈후라이처럼 해주세요. 그리고 냉수 두 잔도 부탁해요.”
드디어 형부의 주문이 끝났다. 딸기에이드 때문인지 형부의 주문이 시작될 무렵부터 그랬는지 소연이는 어느새 입술이 퉁퉁 부어있었다.
“아빠는 창피하게 왜 그렇게 많이 따지고 그래요?”
“소연아, 이건 창피한 게 아니라 똑똑한 거야. 그렇게 해야 몇 백 원이라도 더 아끼면서 더 맛있고 푸짐하게 먹지.”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까지 할 게 뭐있어요. 나는 내 친구들끼리 와도 안 그러는데. 그런 건 또 다 어디서 알아 온거에요?”
“너희 엄마가 여기 가자고 해서 바로 인터넷으로 알아봤지.”
소연이와 형부의 유치하면서도 모두가 물어보고 싶던 대화의 화두는 어느새 언니에게로 날아갔고 언니는 두 어깨를 들썩이며 자신도 유감이란 표시를 했다. 형부가 수프에서 약간의 돈을 더 추가해 바꾼 샐러드가 나오자 우리는 목표물을 좇는 강아지마냥 재빠르게 화두를 음식으로 옮기며 맛있게 먹었다. 음식의 맛에서 시작한 우리의 대화는 약 90분 정도 소연이의 공부를 거쳐 지태씨의 주식벌이를 지나 나의 네일아트를 훑고 언니의 아침 요가를 스치며 형부의 탈모이야기로 마무리 지어지며 그 많은 그릇들도 하얀 바닥을 대부분 드러냈다. 어쨌든 각각의 이야기는 모두 유쾌했고 즐거웠으며 언제나 소연이의 외고 입시를 축하하는 마음이 드리워져 있었기에 더 기쁘고 화목했다.
“식사 맛있게 하셨습니까? 후식은 커피와 녹차 준비되어 있는데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10대 티를 아직 깨끗이 못 벗은 그 알바생은 어느새 조르르 달려와 테이블에 거의 무릎을 꿇다 시피 하며 후식을 물었다. 이 전의 주문 경험이 있어서인지 그는 유난히 형부를 의식하며 말했다.
“커피 네 잔이랑 녹차 한잔 테이크아웃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계산도 지금 할게요. OO카드 20%할인 되는 거 맞죠? 여기요. 참 일인당 빵 하나씩 포장해주세요.”
형부는 능란하게 카드를 꺼내 계산까지 치렀다.
“형님. 레스토랑에서 커피가 테이크아웃도 됩니까?”
지태씨는 형부를 달인 보듯이 신기해하며 물었다.
“똑똑한 딸내미를 둔 아빠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형부는 자신의 알뜰함을 아니 자신의 지나침을 딸의 영특함으로 돌리려 했으나 정작 소연이는 아빠가 부끄러운지 입만 삐쭉거릴 뿐이었다. 소연이와 형부 사이의 어색해진 분위기를 전환시킨 것은 지태씨였다.
“형님이 이걸 다 쏘셨으니 이번에 노래방은 제가 내겠습니다.”
우리 가족의 외식의 끝은 언제나 노래방이다. 우리는 각각 한 손에는 테이크아웃 커피를, 한 손에는 빵 한 봉지를 들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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