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문화상 단편소설 부문 당선작

회식이 잦은 직업을 가진 까닭에 노래방 신곡을 다 꿰고 있는 지태씨와 연예인이 한창 좋을 나이인 소연이는 환상의 짝꿍이 되어 가사 읽기도 바쁜 템포의 노래들을 유연하게 소화해냈고 언니와 나는 80년대와 90년대 가요를 멋들어지게 선보였다. 형부만이 마이크와 내외한 채 탬버린만 치기 바빴다. 언니와 소연이가 형부에게 몇 번이나 노래방 책을 권하고 나와 지태씨도 틈틈이 리모컨을 권하자 그때서야 형부는 못 이긴다는 듯 하나씩 노래를 예약했다. 하지만 형부의 곡들은, 정말 형부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곡들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형부는 유난히 곡 선정에 있어서 우리 눈치를 살피고 또 골똘히 고민에 잠겼던 것 같다. 두 시간 통틀어 형부는 단 세곡만을 불렀는데 그렇게 탄생된 곡들은 임현정의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에코의 행복한 나를, 장나라의 고백 이었다. 형부가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노래방은 현란한 사이키 조명과 미러볼에 맞지 않게 이상야릇하고 거북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소연이는 미간을 찌푸리며 형부를 응시했고 언니도 형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다는 듯 나와 지태씨를 번갈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 어깨를 들썩였고 지태씨와 나도 형부와 언니를 돌아가며 쳐다보며 자꾸 마르는 입에 침만 묻혀댔다. 그리고 형부는 아예 두 눈을 감고 자신의 노래에 심취해 건장한 중저음으로 연약한 가사를 애써 불렀다. 그렇게 신명나면서도 어딘가 이상한 느낌을 지우지 못한 채 우리는 파티를 끝내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형부에 대한 이상한 느낌은 분명한 것인 동시에 분명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소연이는 이제 외고에 들어가기 위한 공부가 아닌 외고에 뒤처지지 않을 공부를 위해 또다시 밤을 새는 생활을 되풀이 하느라, 언니와 나는 나름 바쁜 주부 생활을 하느라, 지태씨도 회사를 다니느라 형부의 이상한 무언가는 자연스럽게 모두에게서 다 조금씩 잊히고 있었다. 언니의 부탁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처럼 동창회에 간 언니는 상당히 들떠있었다. 나의 물방울모양 귀걸이를 빌리러 온 언니는 오랜만의 친구들을 볼 생각이 아닌, 소연이의 외고 합격을 자랑할 생각 때문이었음을 자신도 전혀 숨기지 않고 있었다. 실제로 언니는 처음 소풍을 가는 유치원생마냥 지나치게 설레 어젯밤 잠까지 설쳤다고 했다. 그런 언니를 보내고, 나도 소연이같은 딸을 얼른 갖고 싶다는 생각이 이전보다 더 강하게 들었다. 결혼하고 1년 정도는 신혼을 즐기자고 지태씨와 약속했지만 1년하고도 반년이 넘은 지금도 무소식인 것이, 조급하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었다. 연애 때는 애가 생길까봐 그렇게 전전긍긍했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애가 안 생길까봐 또다시 전전긍긍하게 되니 이놈의 세상이 고약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겨울 옷을 정리하는데 언니가 전화를 했다. 밖에 비가 오기 시작하는데 깜빡하고 빨래를 다 널어놓고 왔다며 그것 좀 서둘러 걷어달라는 것이었다. 언니는, 소연이는 학원에서 오려면 아직 멀었고 형부는 전화를 받지 않아 연락이 안 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창문을 바라보니 어느새 하늘은 먹구름으로 시꺼메져 있었고 비는 빠르고 굵게 내리고 있었다. 뛰어가면 오 분도 안 걸리는 언니 집과의 거리는 필요로 하는 이에게는 더없는 장점이고, 필요를 당하는 사람에게는 성가신 단점이지만 전체적으로 정이 있는 환경임은 틀림없다. 서둘러 언니 집의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갔다. 빨래를 지체 없이 걷어야한다는 생각에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지, 현관에 형부의 구두가 있는지를 확인 못한 것이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빠르게 빨래를 거실로 내동댕이쳐 구출해내고 나서야 안방에서 인기척이 남을 알아챘다. 처음에는 도둑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 발소리를 죽이고 조심조심 안방으로 들어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둑이 흉기라도 지녔으면 어쩌려고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궁금한 마음에 맨손으로 다가갔다. 그의 그림자가 그를 좇아 안방전용 화장실로 들어갔고 그가 볼일을 보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대변이 아닌 소변이었다. 난 그때까지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형부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빗소리와 함께 오줌줄기가 변기를 때리는 소리를 들으며 내가 목격한 것은, 털이 야성적으로 솟아있는 알이 불룩한 두 다리가 다소곳이 앉아있는 모습이었다.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성의 두 다리를 직시하고 나서야 나는 그 두 다리가 형부의 것임을 자각했다. 퍼뜩 떠오른 생각은 그 자리에서 도망을 쳐야한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다시 거실로 나가 내던져진 빨래를 정리하는 척 하며 ‘형부 일찍 오셨네요.’라고 전보다 더 명랑하게 꽥하고 소리를 질러버렸고 형부는 아무렇지 않게 나를 반가이 맞아주었다. 나도, 형부도 연기대상감이었다. 아니, 나만 연기대상감이었고 형부는 그게 형부의 생활이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옳을 것이다. 이유 없는 죄책감에 나는 그 충격적인 사태를 언니에게도, 지태씨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혼자 끙끙 앓을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가 그리 생소한 일은 아닌 듯 했고 외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을 배려한다는 차원에서, 오줌방울이 튀지 않게끔 하기 위한 배려의 일환으로 앉아서 소변을 보는 남자가 증가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형부의 그동안의 이상한 전적을 미루어 보았을 때 앉아서 소변보는 형부와 인터넷상에 나오는 앉아서 소변보는 남자는 결코 같은 종류가 될 수 없었다. 아는 척 하는 것보다 모르는 척 하는 것이 더 힘들다는 말을 뼛속까지 실감하며 찜찜한 패닉의 상태로 나는 며칠을 보내야만 했다. 앞으로 다가올 더 큰 패닉을 준비하지 못한 채 말이다.

우리 아파트보다 옆 아파트의 세탁소가 가격이 조금 더 저렴하다는 이유로 나는 친히 15분정도를 더 걸어 옆 아파트의 세탁소를 이용한다. 가는 길에 같은 아파트 주민이 하는 그 세탁소를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서로 민망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더 돌아가느라 100m는 더 걸어야 하지만 드라이 하나의 500원을 아끼기 위한 수고 치고는 무겁지 않다고 생각한다. 학창시절 의리하나로는 알아주는 나였는데, 어느새 의리보다는 푼돈이 더 아쉬운 어른이 되었다는 것이 뿌듯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만큼 세상을 잘 살고 있는 것이라고 합리화시키기로 했다. 그렇게 지태씨의 양복과 나의 실크 스카프를 들고 가는데 앞에서 낯익은 뒤태를 발견했다. 형부였다. 토요일 오후였으니 형부가 회사에 가지 않는 것은 당연했으나 그 시간에 혼자 아파트 단지를 걷는 모습이 이상했다. 생각해보니 언니와 소연이는 두 달 전부터 예약한 강남 사설학원의 고등학교 공부전략비법 설명회에 간다고 했었다. 형부를 불러볼까 하다가 어린 장난 끼가 발동해 뒤에서 놀래어줄 심산으로 잰걸음으로 형부를 따라갔다. 3m 이내로 접근했을 때, 난 그 자리에 멈춰 설 수 밖에 없었다. 형부의 하얀 박스 티에 비친 까만 브래지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쥐고 있던 핸드폰에서 울리는 진동이 나의 정지한 이성을 흔들었다. 3m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형부에게 내 전화기의 진동이 느껴질까 겁이나 난 무음모드로 재빨리 전환하고 뒷걸음질 쳐 주차된 카니발 뒤에 몸을 숨겼다. 핸드폰은 진동 대신 빛으로 울어대고 있었지만 그것이 신경 쓰일 리 없었다. 오른쪽 길로 꺾는 형부의 옆얼굴을 다시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조금도 원하지 않았던 확실한 확인 사살이었다. 난 이성도 감성도 다 잃어버렸다.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무작정 형부를 쫓아갔다. 잡아서 소리를 지를 생각도 미쳤냐며 따귀를 갈길 생각도 정신 차리라고 부둥켜안고 울 생각도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쫓아갔다. 다만 형부와 나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내 심장은 공포영화의 클라이맥스를 보는 것 마냥 뛸 뿐이었다. 형부의 발길은 공중목욕탕으로 향하고 있었다.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에 대형 찜질방이 들어선 탓에 이제 문을 닫네 마네 하는 역사 깊고 낡은 공중목욕탕이었다. 난 형부의 목적지가 목욕탕임을 깨달은 순간 잡는 것이 아닌 관찰을 택했다. 형부가 여탕으로 갈지 남탕으로 갈지가 이 사태의 핵이자 관건이었기 때문이다. 약 30m의 간격을 유지한 채 나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것인지 그가 착용한 까만 브래지어에서 눈을 떼지 않은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하여튼 그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눈이 아프도록 그를, 그의 까만 브래지어를 째려보았다.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형부는 갑자기 둘로 변해, 남자의 형부 그리고 여자의 형부 이렇게 둘로 변해, 생식세포가 감수분열을 하듯 둘로 나란히 쪼개져, 각각 남탕과 여탕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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