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맹 시각장애인 김경식 시인의 즐거운 도전

“잘 나왔나요?”, “네, 멋있네요! 여기는 하늘이구요, 여기는 동상이 있어요…….” 사진이 잘 나왔다는 멘토의 말에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진다. 카메라를 액정 화면을 누비는 손가락을 통해 세상을 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시인이자 사진작가인 김경식 씨(50)이다. 마음으로 사진을 찍는 김경식 시인의 사진작업에 <건대신문>이 일일 멘토로 동행했다.

김경식 시인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혼자 외출할 때는 안내견인 슬기의 도움을 받아야만 한다. 이런 그가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되었을까? “20년 전부터 시를 썼었는데, 항상 시와 예술을 접목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예술이 사진이 될 줄은 몰랐는데 상명대에서 시각장애인 사진전을 연다고 해서 무작정 찾아갔죠.” 그렇게 만난 사진과의 인연이 올해로 3년째다. 13살에 잇따른 수술실패와 자전거 사고로 시력을 잃기 전까지 평범한 시골 소년으로 살았던 그는 이전의 기억에 의존해 눈에 보이는 세상을 렌즈에 담아낸다. 손과 귀가 그의 두 눈을 대신한다.

   
▲ 출사지까지 길이 멀고 험하더라도 힘차게 집을 나서는 김경식 시인

사진을 찍으러 나서는 그를 집앞에서 만났다. 그는 슬기의 안내에 의지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다. 개는 색맹이기 때문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면 오로지 청력에 의지해 길을 건너야 한다. 지하철을 타는 데는 더 큰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역 공사로 갑작스럽게 바뀐 구조 덕택에 졸지에 미아가 돼 버린 것이다. 지하철역에 음성안내 시스템이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역들에는 예산문제로 음성안내시스템이 설치돼 있지 않다. “음성안내를 위한 리모콘은 정부에서 지원해줘요. 그런데 쓸 수 있는 곳이 없어요.” 그는 안타까운 듯 작동하지 않는 리모콘을 눌러본다.

   
▲ 김 시인이 사진을 찍을 때는 항상 주위의 모습을 설명해주는 멘토가 필요하지만 사진은 시인이 찍는다.

 

   
▲ 멘토가 카메라에 찍힌 사진을 손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렇게 가는 곳곳이 장애물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출사를 떠난다. 사진이 그에게 큰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곳은 인천의 차이나타운. 삼국지에 나오는 모습들이 그려진 벽화거리를 소개하자 사진 한번 찍어보자며 카메라를 꺼내들었다. “이쯤이면 될까요?” 카메라 액정을 바라보는 그의 모습에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없어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밝은 모습은 사진을 찍기 전에는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예전의 그는 집밖으로 나가기도 꺼렸고, 그가 쓰는 시의 내용도 어두웠다. “사진을 찍기 전에는 술을 무척 좋아했었어요. 술을 마시면서 방안에서 어두운 시만 썼죠. 이제는 술도 별로 안 마셔요”

   
▲ 시, 사진과 함께면 행복하다는 김 시인

 

   
▲ 6년동안 함께한 슬기는 언제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가족이나 다름없다.

그는 지난날을 고통의 나날이었다고 표현한다. 13살 때 시력을 잃었고, 아들도 이중장애 판정을 받았다. 운명의 파도가 계속 그를 덮치는 것 같았다. 이런 그가 절망을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은 시와 사진이었다. “시란 가슴속의 한을 풀어내는 수단이자 남의 아픔을 풀어줄 수 있는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내 고통스런 지난날들이 지금 작품의 밑거름이 되죠. 오늘의 아픔이 내일의 희망으로 변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는 시뿐 아니라 사진에서도 희망을 느낀다. “사진을 찍으면서 이제껏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끼게 되요. 그냥 지나쳤던 것을 만져보고 렌즈에 담으면서 새삼 아름다움을 깨닫죠.”

   
▲ 멘토의 도움을 받아서인천 자유공원에서 찍은 사진

 

   
▲ 인천에 소재한 수도권 매립지에 있는 들국화를 찍은 사진.김 시인이 직접 만져보고 찍은 꽃들이다.

장애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편견을 깨고 시와 사진을 통해 끊임없이 세상으로 나서는 시인 김경식. 간단한 일조차 두려워 도망치려하는 우리들이 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이런 용기와 도전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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