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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춘향과 장자연, 우리 그 눈물 닦아줄 수 있을까
신동흔(문과대·국문) 교수 | 승인 2011.03.28 03:44

어느 새 2년이다. 장자연씨가 남겼다는 편지를 내가 인터넷에서 처음 본 건 일본과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 결승전이 열리던 날이었다. 나는 그 날 차라리 한국이 지기를 바랐다. 저 처절한 죽음을 뒤로 한 채 승리의 환호를 즐긴다는 건 너무 잔인한 일이었다.

그 편지에서 무엇보다 슬픈 건 “내가 부모가 없어서 당한다”는 말이었다. 그 순간 그게 어찌 된 일인지 환히 깨달을 수 있었다. 저 권력과 금력은, 제 몸처럼 지켜줄 사람이 없는 한 명의 ‘만만한’ 여인을 ‘상납용’으로 키웠던 것이었다. 현대판 기생으로.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춘향이었다. 기생의 딸이었기에 기생이 돼야 했던 여인. 제 뜻과 상관없이 남자들한테 몸을 바치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기막힌 운명! 그 운명을 거부하고자 한 춘향에게 돌아온 것은 피 흐르는 폭력이었다. - “도화 같은 두 귀 밑에 흐르느니 눈물이요, 백옥 같은 두 다리에 솟느니 유혈이라. (…) 장독(杖毒)에 부푼 얼굴 화기가 별로 없고, 맥 끊어진 두 다리가 유혈 속에 달막달막.”

왜 이런 매질을 당했는가 하면, 이유는 딱 하나. 기생의 딸로 났다는 것이 죄였다. 권력 가진 사내들의 노리개 노릇을 감수해야 하는데 사람 노릇을 하려 한 것이 죄였다.

하지만 그래도 춘향에게는 ‘어머니’가 있었다. 딸을 위해 울어줄 어머니가. - “여러 기생 칼머리 들고 옥으로 내려갈 때 춘향어멈 달려들어 얼굴을 한데 대고 목탁입을 비죽비죽. 검버섯 돋은 귀밑에 눈물이 그저 좔좔.”
그리고 춘향 곁에는 남원고을 민초들이 있었다. 어린 춘향이 권력에 처참하게 당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한 마음이 되어 움직인다. 들끓는 민심! 만약 춘향이 변학도 손에 죽기라도 했다면, 사람들은 가만있지 않았을 것이다. 목숨을 내놓고라도 관아를 뒤집어놓았을 것이다. (일부 춘향전 이본에는 사람들이 거사를 꾀하는 사발통문을 돌리는 내용이 나온다.)

남원고을 민초들은 마침내 춘향을 지켜낸다. 암행어사를 움직여 변학도를 파직시키고, 춘향의 사랑을 이루어준다. 어떤 정치학자는 이도령의 변학도 파직이 사적인 복수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는 껍데기만을 본 것이다. 작품 속의 암행어사는 단연 민초의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이른바 ‘국민의 명령’에 의해.

아아, 자기를 위해 울어줄 어머니조차 없던 21세기의 저 여인은 고독하게 죽어가고 말았다. 그를 지켜주지 못한 우리는 죽음의 공범자다. 이제 그 원한조차 풀어서 달래주지 못한다면, 그 눈물 닦아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인간으로서 자격을 갖지 못한다. 또 다시 체념과 망각 속에 속절없이 잦아들 것인지, 저기 한 서린 눈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신동흔(문과대·국문) 교수  kkp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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