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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이동찬 사진부장 | 승인 2011.03.28 03:56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이 책은 시대와의 단절로 고민하는 청년이 자살하는 내용으로 끝난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의 죽음은 소설 속에서만 끝나지 않고 그 당시 젊은 세대들의 자살 유행을 일으켰다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의 죽음이 이런 파장을 일으키는데 실제 우리 사회에서의 누군가의 죽음은 다시 말해 무엇 할까.

혹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죽음은 최고의 상품이라고도 말한다. 죽음은 기사가 되어 신문으로 팔려나가기도 하고 추모를 겨냥한 상품으로 출시되기도 한다. 일례로 먼데이키즈 김민수의 죽음 이후에 먼데이키즈 ‘Recollection’ 앨범이 발매된 적이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 죽음은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죽음이 반드시 어떠한 의미를 갖고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이다. 그 변화가 충격이든, 당혹감이든, 슬픔이든 말이다.

불합리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을 기억하는가? 그의 죽음은 부조리한 사회를 향한 메시지였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죽음에 둔감했다. 죽음이 주는 메시지에 둔감했다. 인권이 없는 노동환경에서 착취당하며 살아야 했던 노동자들이 지금의 노동환경을 쟁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죽어갔는가. 지금의 노동환경이 좋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노동환경까지의 변화하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는지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에 ‘시간강사’라는 명칭을 폐지하는 고등교육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그러나 개정안을 들여다보면 6개월 계약에서 1년 계약으로 연장된 것과 시급이 6만원에서 8만원으로 오른 것 뿐이었다. 아, 그리고 하나 무늬만 교원 자격도 부여받았다고 한다. 명칭도 ‘시간강사’에서 시간을 뺀 ‘강사’가 정식명칭이 됐다. ‘강사’와 ‘시간강사’의 처우는 별반 다르지 않다. 다만 시간강사를 시간강사라 부르지 못하고 그냥 ‘강사’로 불러야 한다는 사실에 애석함을 느낄 따름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시간강사들이 생활고를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다. 지난 해에는 조선대 시간강사 서정민 씨가 위와 같은 이유로 자살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우리 학교 시간강사의 답변은 놀라웠다.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죽음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 세상에 전하는 메시지가 수없이 많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죽음에 둔감하다. 사회가 알아줄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죽음이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사회는 언제까지 이런 죽음을 수수방관하고 있을 것인가. 죽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회가 진정한 사회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라는 전태일의 마지막 목소리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동찬 사진부장  fortress@konku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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