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질이 돈만 가지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소득은 높아간다는데 세상은 더욱 팍팍해지고 삶은 더욱 치열해진다. 역사 진보설에 따르면 어제보다는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이 나아야 한다. 이는 낙관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삶에 거는 우리의 소망 때문에 그렇다. 역사가 퇴행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슬픈 일이고,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품고 있는 희망은 우리의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그러한 다짐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는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중압감은 날로 더 심해진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이야말로 옆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격동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그러나 역사를 돌아보면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자신의 시대가 역사상 가장 격동기였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아마도 그것은 가까운 것일 수록에 더욱 절절하게 나의 피부에 닿고, 나의 십자가가 더욱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대학 생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등록금의 고민, 진로의 암담함, 시장의 논리에 따른 구조 조정 작업과 나의 학과가 없어질는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캠퍼스에 짙게 드리우고 있다. 대학의 운영을 시장의 논리로 설명하는 세태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립의 문제를 외면만 할 수 없다는 데 우리의 고민이 있다.
이러한 세태 속에서 가장 위협 받고 있는 학문이 인문학이다. 폐과가 속출하고, 삶의 길을 찾아서 학과의 이름을 바꾸고 커리큘럼을 다시 짜는 데 골몰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는 결국 문ㆍ사ㆍ철(文史哲)의 위기로 대변될 수 있다. 문ㆍ사ㆍ철은 동양에서 공자(孔子)나 서양에서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이래 인간의 존재론적 고민에 답을 주는 종주학문이었다. 지금 바로 그것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강의를 하면서 질문을 하다보면 학생들의 인문학적 깊이의 낮음에 놀랄 때가 많다. 물론 취업에 우선해야 하고 토플, 토익, 텝스에 몰입해야 하는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인생에서 삶의 훌륭한 도구를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철학과 문학을 외면한 채 오로지 기능인만으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너무 적막한 일이다. 나는 누구인가, 선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에 대한 고민이 없이, 취업, 고소득, 남친․여친, 전자기기에 삶을 몰입하면서 살기에는 젊음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그러므로 삶이 각박할수록 내일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은 인문학으로 돌아가야 한다. 자연과학도이든, 예능계이든, 사회과학도이든 지금부터라도 『맹자』나 『사기열전』을 읽고, 셰익스피어와 몽테뉴의 세계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그리 시간이 많지 않다. 사회에 뛰어들어 삶에 쫒길 때는 이미 시간도 없고, 후회도 늦다. 시간이 많이 남는 정년퇴직 후에는 읽어도 그 지식을 활용할 기회가 없다. 지금이 도서관으로 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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