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개교기념식이 열리는 5월 12일 우리대학은 건학 80주년을 대내외에 선포한다. 우리대학의 건학원년은 지난해까지는 조선정치학관이 개관한 1946년 5월 15일로 하였으나 올해부터는 민중병원의 전신인 사회영(社會營) 중앙실비진료원이 설립된 1931년 5월 12일로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건학 원년의 개정안은 지난달 교무위원회를 통과한데 이어 학교법인 건국대학교의 재단이사회를 통과했으며 동문회에서도 적극적인 찬성과 수용의견을 냈다. 사실 건학 원년의 개정은 진작 이루어졌어야 할 일이었지만 뒤늦게라도 바로 잡은 것은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외 많은 대학이 그 대학의 모체나 시발점이 된 기관의 설립 시점을 건학 원년으로 삼고 있다. 연세대학교의 경우 세브란스의대의 전신인 광혜원이 설립된 1885년을 창학원년으로 기산하고 있고 중앙대학교는 중앙유치원이 설립된 1918년을 창학원년으로 정하고 있는 것 등이 그 예이다.

우리대학이 건학원년으로 삼기로 한 사회영 중앙실비진료원은 다른 대학들의 설립 모체와 비교하면 그 설립의 취지와 목적 그리고 운영방식 등이 국내외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모범적이고 자랑스럽기 그지없다. 우리대학의 설립자인 상허 유석창선생은 돈이 없어 치료조차 못 받는 가난한 조선민중에게 생명과도 같은 의술을 베풀어주기 위해 실비진료원을 개설했다. 상허선생은 서울대의대의 전신인 경성의전 출신의 의사로 돈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편안한 의사생활을 할 수도 있었으나 스스로 안락을 버리고 민중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는 당시 32세의 청년 의사였던 상허선생이 YMCA 강당에서 장안의 유지와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연설문에서도 드러난다. “애국애족은 거창한 명분, 찬란한 깃발 아래서만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이웃, 비근한 일로부터 시작하여야 합니다. ---우리들의 지도자이자 선배이신 여러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서 실비병원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실비를 받고, 없는 사람에게는 무료로 진료해 드릴 것입니다. 나는 이 사업에 내 생애와 정열을 다 바칠 것을 명세합니다.”

상허선생은 병원이 개인의 영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중에 봉사하기 위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름에도 사회영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그 병원이 바로 지금의 건국대병원의 이전 이름인 민중병원의 전신인 것이다.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많은 선각자가 애국과 애족의 충정에서 교육사업이나 민중계몽운동을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 상허선생처럼 초지일관 언행이 일치하면서 민중을 사랑하는 태도를 보인 이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한마디로 흠잡을 데 없는 선각자이자 민족의 사표(師表)였던 것이다. 우리 대학은 그 설립정신의 숭고함에 있어서 다른 대학이 쫒아 오기 어려울 만큼 우위에 서 있는 것이다.

바로 그러한 점이 이번 개교기념식에서 우리대학이 민중병원의 설립시점을 건학 원년으로 선포하는 이유이다. 건학 원년의 개정은 우리 모두에게 건국가족의 일원임에 대한 자긍심을 더 높이고 상허선생의 건학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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