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정치인을 믿어본 적이 있는가. 친구도 쉽게 믿지 못하고 심지어 때때로는 나 자신조차도 믿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세태 속에서 부패와 거짓의 상징인 대한민국의 ‘정치인’을 믿어본 적이 있냐고 지금 묻는 것이다. 물론 미디어를 통해 정치인의 부패나 거짓을 간접적으로 접할 때 가끔은 정말로 내가 ‘악마를 보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회의적일 때도 있다. 그만큼 우리에게 정치인이란 믿기 어려운 존재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으며, 우리를 이렇게 만든 정치인들의 책임도 실로 막중하다.

지난 5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의 반값 등록금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대학생 단체의 삭발식 집회가 있었다. 꽃다운 청춘들이 삭발 투쟁까지 하면서 등록금 투쟁을 이어올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답답해하며 또 함께 슬퍼한다. 그러면서 또 다시 회의감에 젖는다. 역시 그 누구도 등록금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고 선거 때의 공약은 정치인 본인을 빛내기 위한 치장거리일 뿐이라고 말이다. 불신은 이렇게 다시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정치인의 공약과 언행을 진의로서 받아들여 본 적이 있느냐고 다시 묻고 싶다.

지난해 6.2 지방선거 때 투표율을 제고하기 위한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우렁찬 가운데서도 어느 한쪽에선 여전히 ‘누가 뽑히든 똑같다’라고 말하며 정치적 회의감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회의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극단적 회의의 표출은 미디어를 통해 이미 고착되어 버린 정치에 대한 분노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책은 되지 못한다. 그러한 회의감의 표출로 인한 투표 불참여는 정치를 저급화시키는 악순환을 재생산하는데 사실상 이바지 하게 되는 셈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불신만으로 점철된 정치에 대한 시각이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그러니까 불신의 만연을 통해 나아지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고 무작정 믿으란 말인가. 또 다시 속을지도 모르는데, 아니 속을게 뻔한데?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는 ‘애원’이 되어버릴 지경인 우리의 정당한 요구 사항들, 청년 실업 해결과 등록금 인하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슬픔어린 고충들! 그런데 결국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 설 사람, 즉 그럴 수 있는 참된 정치 지식인을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라는 점을 아는가.

내년, 우리나라는 두 차례의 선거를 치르게 된다. 지금 제 19대 국회의원 선거와 18대 대통령 선거를 한해 앞두고 있는 것이다. 우울하게도 이대로 이번 정권에서 등록금 인하 공약을 이행하지 않은 채 선거로 치닫는다면, 다가오는 선거에서 등록금 인하 공약은 100% 다시 출현한다. 그런데 정말! 잘! 열심히! 들여다보면 제대로 된 해결책을 가진 후보는 분명히 존재한다. 정치인, 그들은 결코 다 똑같은 사람들만은 아니다. 그들을 열심히 살펴봄으로써, 그리고 진짜 우리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혜안을 가진 사람을 가려냄으로써 우리가 그렇게도 바라던 등록금 인하의 기회가 정말로 온다는 것을 확신한다.

하지만 바로 그 때에 정치인들에 대한 우리들의 막연한 분노와 불신에 의해 그 해결사들이 가려져버린다면 우리는 또 다시 4년, 5년을 고통스럽게 보내야 할 것이다. 비로소 우리는 긴장해야 할 때다. 학기 내내 지칠 줄 모르는 우리들의 등록금 걱정은 과연 필할 수 없는 것인가. 집값이 또 오른다는 벼락같은 소식이 들려오는 마당에, 비싼 등록금에다 비싼 자취방세까지 걱정하며 살아가야 하는 지금 이 사회는 바꿀 수 없는 것이냐는 말이다. 결코 그렇지 않다. 해결책으로 이어질 ‘진의’조차 일단 무조건적으로 거부해버리고 마는 그 막연한 회의감으로 기어코 지금의 이 고통스러운 현실을 숙명적으로 받아들여 버리지 말고, 이 ‘숙적’들의 퇴치를 위해 우리 이제 슬슬 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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