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을 휩쓴 항쟁들은 한국인들에게 제한적인 수준에서나마 자유민주주의적인 정치의 장을 선사했다. 비록 그 한계는 명확했지만 한국인들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상식으로 인정받는 정치 공간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 87년 항쟁은 결코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80년대를 관통하던 투쟁들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이 80년대 투쟁들의 방향성을 결정적으로 확립시켰던 투쟁은 다름 아닌 1980년 광주에서부터 시작됐다.

5월 광주와 광주가 보여준 것들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실권을 잡은 전두환과 신군부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는 다양한 형태로 분출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김영삼을 포함한 자유주의 정치인들은 운동의 분출이 군부의 개입 명분을 줄 수 있다며 운동의 김을 빼놓는 구실을 했고 결국 이는 "서울역 회군"이라 이야기 되는 결정적인 운동의 후퇴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신군부는 이를 기회삼아 계엄을 전국으로 확대시켰다.

하지만 광주에서는 운동의 불씨가 여전히 남아있었다. 5월 18일부로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자 광주 시민들은 이에 맞선 저항에 돌입했고, 5월 21일에는 무장한 시민들이 계엄군을 도시 밖으로 몰아내며 광주를 해방시켰다. 광주가 해방된 직후부터 광주의 평범한 사람들은 치안 유지, 저항의 조직화 등을 스스로의 힘으로 해냈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잠재력은 해방광주에서 현실이 됐다. 비록 투쟁이 고립되면서 광주는 다시 독재자의 손에 넘어갔지만 해방광주는 민중의 권력 장악과 민주적 사회통제 가능성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됐다.

무엇을 할 것인가
1980년 광주와 뒤이은 투쟁들의 성과로 한국사회에서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식이 됐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이것의 의미가 무엇이며, 이것을 어떻게 지켜내고 전진시킬 것인가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 최소한의 민주주의를 하나의 의례로서만 존재하게 하며, 때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1980년 광주 사람들은 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위해 거리에 자신의 피를 뿌렸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그들이 발견했던 것은 민주주의의 최소한을 훌쩍 뛰어 넘는 자기 해방의 정치였다. 우리가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최소한의 민주주의라도 지키고자 한다면 최소한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의 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실천들은 학교에서, 노동자들의 작업장에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전진시키는데 중요한 토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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