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민 학우의 문학의 창[1]

당신은 지금 순수한가요. 만약 누군가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당신은 어떤 대답을 하시겠어요. 보통 대답을 회피하거나 어색한 표정을 짓겠지요. 지금 이 시대에 와서 순수라니 하면서.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에서 지나치게 순수하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나쁘게 보이기도 합니다. 빠른 것이, 효율적인 것이, 영리한 것이 더욱 높은 가치를 갖는 이 시점에서 사람들은 순수함을 독이라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은 참 좋은 사람이야. 그런데 너무 순수해서 힘들어. 마치 순수하면 손해를 볼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만 순수함을 버리는 연습을 하고 있는 걸까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이라는 소설을 보면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요조라는 이름을 가진 이 청년은 스스로가 비어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광대 흉내를 내고 익살을 떨며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 줄 뿐이지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없는 겁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나는 도무지 인간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이 사회에 쓸모없는 존재일 뿐이야. 작가는 자기학대와 혐오를 통해 역설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인간의 순수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요조는 사회가 요구하는 존재가 결코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평생을 자기혐오에 시달리다가 자살을 시도하고 결국 폐인이 돼버립니다. 그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그저 당시의 사회에 맞지 않는 순수한 사람이었을 뿐이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방황하는 요조의 모습이 우리들과 비슷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누군가가 요구하는 모습이 되지 못해 스스로를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스스로가 간직한 순수와 꿈을 버리지 못해 비난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기회가 있습니다. 전혀 몰랐던 무엇인가를 배우고, 깨닫고, 슬퍼하고, 기뻐하면서 다른 무엇인가로 변화하려 하고 있으니까요. 더 좋은 무엇인가로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실패할수 있습니다. 도전했던 모든 일이 항상 성공할 수는 없겠지요. 실패는 슬픔을 가져오고, 절망과 아픔을 가져올 겁니다. 그 과정을 결코 쓸모없는 시간이라고, 가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 시간들이야 말로 정말로 소중한 순수를 위한 시간일겁니다. 아름다웠던 20대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느 날 30대의 내가 찾아와 물을 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순수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요.

 

 

 

    

김선민 학우    
(문과대ㆍ국문4휴)    
2007년 <건대신문> 문화상 소설부문 당선자    

 

새롭게 출발하는 김선민 학우의 고정 칼럼코너 ‘문학의 창’이 이번호부터 시작됩니다. <건대신문>은 본 코너를 통해 독자 여러분께 문학 작품을 통해 인문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전달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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