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교수 여러분,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제가 정말 운 좋게 건국대에 취직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어갑니다. 그 덕으로 저같이 능력 없는 사람이 밥을 먹고 살아왔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학생들 위해서 부족한 것은 많지만 나름대로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교수는 학생들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학평가라는 것이 생긴 이후 세상이 어지러워졌습니다. 영문도 잘 모르는 우리대학 영문과 교수가 가르쳐준 ‘publish or perish’가 대한민국 교수사회의 금과옥조가 된 것입니다. 학생들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문과 폐지에 앞장설 만큼 인문학적 소양은 눈곱만큼도 없는 제가 보기에도 정말 황당무계한 일입니다. 교수를 논문 수로 평가하다니요?

훨씬 더 참기 어려운 것은 논문 수에 의해 대학에 순위를 매기는 작태입니다. 외부평가결과에 대해 저 같은 사람도 열을 받는데, 오로지 학생들과 학교를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교수들이 받는 상처를 누가 달래줄 수 있단 말입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총장과 교무처장이 업적평가기준을 경쟁대학 수준으로 올리려고 하고 교수협의회가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니까요. 대학평가를 만들어낸 미국사람들과 국내 언론사들을 욕한다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우리 교수들이 논문을 안 써서 학교 순위가 떨어졌다고 난리를 치니 일단 논문 한편씩 더 씁시다. 그리고 총장에게 강력히 요구합시다. 교수업적평가, 강의평가 등 온갖 평가에 시달리는 교수들을 존중하는 행정을 하라고 소리칩시다. 예를 들어, 예문대는 6-9천명의 고교생들이 참가하는 디자인실기대회를 10년 동안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련 교수들은 오로지 학교를 위한다는 일념으로 각종 평가와는 전혀 무관한 일에 밤낮도 주말도 없이 매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수들과 행정실장에게 날아오는 것은 감사 지적사항입니다. 정말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하지만 모든 잘못이 교수업적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하니 일단 논문 한편 더 쓰고 따집시다. 잘못된 행정은 당장 시정하라고. 교권을 철저히 보장하라고.

총동문회에도 요청합시다. 학교위상에 걸맞은 발전기금 납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교수업적 순위 못지않게 동문들 발전기금 순위도 중요하니까요.

논문 수에 의해 대학과 교수를 평가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주장하기 위해서, 우리 건국대학교 교수들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 일단 논문 한편 더 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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