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그를 지네라 불렀어. 캠퍼스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똑바로 쓴 메이커 회색모자에 베이지색 면바지를 즐기는, 아주 반듯해 수면위로 떠오르는 빛만 보고 자란 사람으로 보았던 거야. 여자는 남자를 만날수록 자신에게 빗겨나가 미끄러지길 원했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어. 아니 여자는 그를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을 테지? 지네의 다리가 많은 만큼 남자에게는 떨쳐낼 수 없는 무언가가 끈적끈적하게 있었다나.

저 물에도 표정이 있어? 여자는 지네에게 물었어. 지네는 말없이 담배만 폈데. 여자에게 그런 그는 익숙했을거야. 사실 여자의 질문에는 대다수 필요 없는 답만을 함구하고 있었거든.

공강이 생기면 항상 그들은 손을 잡고 일감호 벤치를 찾았어. 그가 즐겨듣던 앙드레가뇽의 Un Piano Sur La Mer의 가락처럼 어둠이 지나치게 조용하거나 혹은 소란스럽게 깔리던 날이었지. 일감호의 물 표면은 드라마마냥 캠퍼스를 재생시켰어. 사람들은 그들에게 늘 엑스트라였거든. 지금 기분 어때? 조용히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여자는 물었어. 지네는 하품만 크게 한번 했데. 그런 그를 여자는 뚫어져라 관찰했어. 그러다가 가끔 지네가 입을 열 때가 있거든. 지금부터 그 순간을 이야기 해줄게.

지금 물 색깔이 어때? 지네가 고개를 두어 번 둥글게 돌리더니 말했데. 여자는 깜짝 놀라면서도 침착하게 대답했어. 더러워. 라고. 지금 우리 위에 떠 있는 것들이 뭐가 있어? 지네가 말했어.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여자는 고개를 들어 위를 봤어. 머리 위에는 가로등 불빛과 달 조각과 별부스러기 몇 개가 있었데. 여자는 본 그대로 이야기 해주었어. 일감호는 빛만 보고 자라. 지네가 말했어. 여자는 한동안 멍해졌다고 하더라. 나 같아도 그랬을 거야. 아니 그래서 어쩌라고 미친놈아! 했겠지. 근데 여자는 참 배려심이 깊었는지 아님 그 여자도 미친년이었나. 잘 모르겠지만 아까 말했잖아. 여자는 지네를 아주 반듯해 빛만 보고 자란 사람으로 봤었다고. 그건 여자의 판단오류였데. 다 그렇잖아. 온라인 게임에 목숨 걸어 열렙하다가 갑자기 렉 나서 사람 돌게 만드는 그런 경우. 다 첫인상은 그렇게 오류가 나. 여자가 생각할 동안 일감호를 바라보는 지네의 이마에 3자 주름이 깊게 파였나봐. 그만큼 그는 말 한마디에 신중했데. 갑자기 여자의 머릿속에 지네의 모습과 일감호의 모습이 페이드인 페이드아웃을 반복됐어. 자외선에 노출되면 살가죽이 타들어가듯, 모두들 빛을 쫓다 삶이 투영될수록 더러워져. 뭐 이런 소리를 하고 싶었던 게 분명해. 라고 여자는 내게 말했지. 듣는 순간 그 지넨가 뭐시긴가의 싸대기를 후려갈기고 싶어졌지만 뭐 더럽지만 맞는 얘기잖아? 더러워서 참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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