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해·항주·소주를 가다

지난 8월 22~26일, 2011 중국해외역사탐방(역사기행)이 있었다. 올해에는 <새로고침> 총학생회와 함께 약 100명의 학우들이 함께 중국 상해, 항주, 소주의 우리나라 역사유적과 중국의 문화, 유적들을 탐방하고 돌아왔다. <건대신문>은 올해에도 총학생회와 학우들과 함께 동행하여 독립운동의 사적과 중국의 문화를 보고 느끼고 왔다. 참가했던 학우들에게는 추억을, 참가하지 못했던 학우들에게는 우리가 느꼈던 경험을 다시금 지면을 통해 소개한다.

▲ 2007년 상해, 마천루 사이에 빈민가들이 보인다 ⓒ 윤태웅 기자

4년 만에 다시 만난 상해ㆍ항주ㆍ소주
상해의 입구, 상해-푸동 국제공항의 입구를 나서자 습한 기운과 높은 기온이 훅 하듯 다가왔다. “공기가 시큼해” 총학생회 박성준(경영대ㆍ경영4) 회장이 말했다. 다른 학우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의 표정은 모두 밝았고 목소리는 짜증 섞인 톤보다는 밝고 높았다.

이번 상해, 항주, 소주 방문은 처음이 아니다. 4년 전인 2007년 역사기행에 참가했던 <건대신문>과 총학생회, 학우들도 이곳에 다녀왔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며 본 상해의 마천루와 도시들은 2007년의 지면에서 본 것처럼 하늘 끝까지 치솟아 있어 가슴을 울렸다.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역은 4년 전, 마천루와 빈민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4년 뒤의 변화가 사뭇 놀라웠다. 빈민가가 많이 사라지고, 재개발이 한창 진행돼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곳이 없었다.

▲ 2011년 상해 남경로, 신세계백화점(삼성 현판)을 비롯한 마천루가 인상적이다ⓒ 김정현 기자

물론 빈민가가 없던 것은 아니다. 악명 높은 빈부격차는 여전한가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족 가이드 김금화 씨는 “전 도시에 빈민가를 리모델링해 아파트를 지어주고 있으며 주민들을 새로 지은 곳에 그대로 입주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재건축, 재개발이 빈민들을 밀어내고 돈 없는 사람이 혜택을 받기 힘든 등의 문제가 있는 것에 비하면 놀라운 말이었다.

공존 혹은 애물단지, 외국에 남은 우리 사적의 현재
공항에서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폭탄 의겨로 알려진 홍구공원(현지명 루쉰공원)으로 이동, 근처에서 걸어서 움직였다. 수많은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웃통을 벗고 운동하는 할아버지, 숲에서 바둑을 두고 있는 사람들, 테니스를 치고 있는 아저씨들, 산책하다 대화를 하는 여성들. 하나같이 편한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이 마치 동네 공원을 방불케 했다. 한국인이 갖는 관광, 유적지의 일반적 모습과는 차이가 있었다. 

▲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의거를 한 장소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 김정현 기자

 

▲ 홍구공원의 일상 ⓒ 김정현 기자

김금화 씨는 “홍구공원은 이전에는 ‘루쉰(『아Q정전』의 작가)공원’이라 불리며 대중적인 공원으로 조성되었다”며 90년대 한-중 수교 이후 매헌(윤봉길 의사 유적이 있는 사당, 윤봉길 의사의 호 ‘매헌’을 따 지어짐) 중심으로 관광지로 재조성 되었다”고 설명했다. 홍구공원은 주민과 함께 공존하는 유적지로서 사회에 적응한 것이다.

저녁을 먹기 전 마지막 관광지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임시정부)를 향해 이동했다. 임시정부 앞에는 10여가구의 마을이 있었다. 김금화 씨는 “상해 대부분이 재개발되어 주민들이 혜택을 보나, 임시정부 주변 주민들은 유적 때문에 혜택을 보지 못해 불만을 갖는다”고 알려줬다. 우리에게는 중국에 남은 9개의 임시정부 중 가장 보존이 잘 된 독립운동의 상징이나 해당 지역의 상당수 주민들의 삶에는 타격을 주는 애물단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창문 틈으로 통해 본 주민들의 집은 빈민가의 그것과 같았다. 주민들을 인터뷰하고 싶었으나 가이드가 한국인들에게 거짓말을 종종 한다고 귀띔해 줬다.

임시정부를 떠나 돌아서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홍구공원의 예처럼 임시정부도 주민들과 공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되는 순간이었다.

 

▲,▲▲ 상해의 마천루들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 김정현 기자

 

▲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상해 내 예당 옛거리. 청조시대의 건물에 스타벅스가 자연스럽게 어울린 것이 인상깊다. 중국은 대부분의 사적을 이같이 보존하고 있었다. ⓒ 김정현 기자

 

 

▲,▲▲ 항주의 졸정원. ⓒ 김정현 기자

 

 

 

▲,▲▲ 항주의 서호. 세계적인 명성만큼이나 그 경관도 수려했다. ⓒ 김정현 기자

 

 

▲ '한산사 달 밝은 밤에..'의 싯구로 유명한 한산사. 한산사의 현판 글자는 셋 다 비슷해 보이지만, 마지막 '사' 자를 쓴 사람과 앞 두 글자를 쓴 사람이 다르다고 한다.  ⓒ 김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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