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궤(儀軌)는 의식(儀式)의 궤범(軌範)을 뜻하는 말로 조선시대 왕실 의식의 주요한 내용을 기록과 그림으로 정리한 책이다. 전 왕대의 의식을 전범으로 삼아 후대에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책으로서, 의궤를 보면 조선의 왕실문화의 진면목이 나타난다. 의궤 중에서도 왕이 친히 열람할 수 있도록 제작한 의궤를 어람용(御覽用) 의궤라 하는데, 1782년 정조는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짓고 어람용 의궤를 특별히 이곳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1866년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에 쳐들어오면서 이곳에 보관되어 있던 의궤를 집중 약탈해갔다. 프랑스 군대는 6,000여책의 왕실 도서가 보관되어 있던 외규장각을 방화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가운데에도 의궤들은 프랑스로 가는 배에 실었다. 화려하고 품격이 있는 외규장각 의궤의 장정과 비단표지, 반차도(班次圖) 등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외규장각 의궤의 존재는 1975년 재불학자 박병선 박사에 의해 그 존재가 알려 졌고, 1993년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의 한국 방문 후 의궤 반환 문제는 한국과 프랑스 정부간 최대 이슈로 부각되었다. 이후 양국 정부는 의궤 반환 협상 테이블에서 만났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외규장각 의궤의 실물조사, 일부 의궤의 디지털화 작업이 성과라면 성과였다. 프랑스측이 한국측에 반환을 꺼린 것은 프랑스가 보유한 약탈문화재가 다수여서, 의궤 반환이 다른 문화재 반환의 선례가 되는 것을 우려하였기 때문이었다.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 기간 중 한국과 프랑스는 의궤 반환에 전격 합의하였다. 20년 가까운 반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5년마다의 대여 갱신’ 방식을 취했지만, 의궤가 145년만에 한국에 돌아온 것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이다. 의궤는 귀환 이후의 활용 이 중요하다. 의궤는 조선왕실의 행사 기록물인 만큼 일반 감상용이나 전시용 문화재와는 차이를 보인다. 의궤 연구자가 의궤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의궤에 대한 적극적인 연구를 통해 조선 왕실의 문화, 나아가 한국학의 수준을 높이고 한국문화와 세계문화의 교류에 기여하는 방안들을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또한 의궤 귀환을 계기로 해외에 산재한 우리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반환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해 나가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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