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없이 학교생활 여러 날이 지나갔어. 사실 남들과 별반 다르지 않게 보낸 날들이긴 하지. 정신 없이 보낸다는 말이 정말 나를 위해 바쁘게 시간을 보냈는지, 아니면 생각 없이 보냈는지는 모르는 거지.

카페에서 다시 여자를 만났을 때 여자 옆에는 그 지네란 놈이 있었어. 변함없이 메이커 모자를 쓰고 베이지색 바지를 입고 있었지. 은은한 조명 아래 실내장식들이 갈색 빛을 주변에 번지게 하고 있었어. 그런데 내가 봤을 때 지네는 별로 이런 카페에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였어. 그냥 느낌이 그래. 뭔가 어울리고 섞인 듯 싶으면서도 잘 섞이지 않는, 마치 금방이라도 이별할거 같은 커플의 느낌이었지 카페와 지네는.

지네에게 내가 물었어. 이런데 자주 오냐고. 지네가 별 말이 없자 여자가 대신 답해줬지. 별로 안 오는데 여자랑 만나면서 가끔 오게 된다고. 그때 지네가 드디어 입을 열었어.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언제부터 이렇게 팔리기 시작한지 아녜. 도대체 이건 뭔 또 미친소린가 싶었어 나는. 그래서 그냥 입을 다물고 있는데 지네가 말을 이어가.

커피는 원래 수도승들이 수양용으로 찾던 거였는데 이젠 아니래. 옛날부터 고종황제나 부자들만 마시다가 한국전쟁 끝나고 미국인들이 들여와서 마시니까 좇아 마셨다나. 그리곤 외국 카페문화가 들어오면서 또 그거 좇아서 마시니까 이만큼 팔리는 거래. 그래서 자기는 별로 카페를 안 좋아하는거래. 난 그냥 대충 아아, 네 그러고 대꾸해줬지. 솔직히 그래서 어쩌라고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여자가 만나는 남자니까 참았지. 그것만 아니면 저만치 멀어지는 지네 뒤통수에 돌을 던졌을텐데 말야.

집에 가는 길에 지네 말을 곰곰히 곱씹어보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머리가 아파. 그놈이 한 말이 왠지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사실 여자가 일감호에서 지네랑 있었던 얘기를 했을 때부터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뭔가 찝찝했단 말야. 지네에게 뭐라고 말을 해야 내 속이 후련할까 싶어 고민해봤어. 뭔가 좇는게 그렇게 나쁜 일인가? 원래 다 그런거잖아?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 격이듯, 우리가 흉내내고 따라하는게 언젠간 다시 우리에게 좋게 돌아오고, 그런거 아니겠어? 그래. 내일 지네를 만나면 이 말을 던져주자. 자기가 무슨 성인인줄 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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