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배우의 인상이 강렬하면, 사람들은 종종 그 배우를 떠올리는 것으로 영화를 기억하곤 한다. <티파니에서 아침을>, <로마의 휴일> 이 영화들은 한 여배우의 이미지로 기억된다. 영화의 스토리보다도 먼저 떠오르는 얼굴, 오드리 헵번이다.

단역으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오드리 헵번은 1953년,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준 아름다운 외모와 발랄한 연기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이후 그녀는 <사브리나>, <마이페어레이디>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1950~60년대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한다. 그녀는 영화 속 소녀의 모습뿐만 아니라 당찬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데뷔할 당시 유명했던 ‘캐서린 헵번’이라는 여배우를 의식한 영화사 사장은 오드리 헵번을 불러 이름을 바꾸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녀는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했다. “나는 오드리 헵번이에요. 내 이름 그대로 세상에 나갈 거에요.”

데뷔 후 대성공을 거둔 그녀의 영화만큼이나 유명해진 것은 바로 그녀의 패션이다. 그녀가 영화 속에서 입은 옷들은 모든 여성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됐고, 그녀는 하나의 패션아이콘으로도 자리잡았다. <로마의 휴일>에서의 롱스커트, <티파니에서 아침을>에 나온 검정 드레스 등은 지금까지도 ‘헵번 스타일’이라 불리며 사랑받는 패션이다.

하지만 배우로서의 성공보다도 행복한 가정을 원했던 평소 그녀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두 번의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게 된다. 이후 그녀는 결혼 대신 두 아들을 키우며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아나간다. 어린 시절, 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며 힘든 생활을 경험했던 그녀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녀는 말년에 대장암으로 투병하면서도 소말리아 어린이들을 돌보고 어린이 난민구호 활동을 펼치는 등 어려운 이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이어갔다. 특히 그녀가 아들에게 ‘한 손은 자신을 돕는 손이고,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는 손이다’라는 구절이 담긴 시를 유언으로 남긴 사실은 유명하다.

누군가는 그녀를 향해 ‘우리가 진정으로 아름다운 오드리 헵번을 만난 것은 <로마의 휴일>에서가 아니라, 아프리카에서였다’고 말했다. 그녀는 단지 영화 속에서만 사랑스러웠던 것이 아니라 카메라 밖에서도 언제나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시간이 흘러도 영원히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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