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곳에서 그를 만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는 교내에서 꽤 유명한 인물이다. 언젠가 어떤 여자가 그를 지네라고 부르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왜 지네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다지류를 혐오하니 그냥 그 라고 부르겠다.

왜 벌써 9월이 끝나가는데? 라고 부르짖기에도 늦은 타이밍이다. 해야 할 것은 많고 한 것은 없고 하지도 않고. 무기력증과 불면증이 겹쳐 이 환절기에 유행하는 감기라도 걸려야 약이 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드는 초가을의 어느 날 새벽. 깊이 잠든 룸메이트 몰래 쿨하우스를 빠져나온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일감호를 걷고 있었다. 그러다 그를 만났다.

시간은 새벽 3시 반. 나처럼 불면증에 시달리는 젊은 청춘이 아니라면 술 먹고 뻗어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왜 그가 모자를 눌러쓰고 멍하니 쭈그려 앉아 일감호를 바라보고 있는걸까. 그도 불면증인가 보다. 난 동질감에 말을 걸었다.

여기서 뭐해요? 거기 있으면 수위아저씨가 안 쫓아내요? 그냥, 잠이 안와서. 아, 나도 잠이 안와서 나왔는데.
여기까지 대화 종료. 그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불현 듯 입을 열었다. 안개 보러 갈래?

안개라는 것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서 보고 싶을 때면 언제든 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자연현상이었나. 하지만 난 뜬금없는 그의 말에 맞장구 쳐주었다. 그래요. 어딘데요?

모든 것이 잠든 것처럼 보이는 새벽의 도시는 아름다운 건지도 모른다. 어둡고 더러운 모든 것들은 잠들고 감추어져 있어서 어쩌면 이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 존재는 사람의 모양을 하고 두발로 걸어다니는 것들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인적이라곤 없는 도시는 고요했다. 아니, 나와 그가 있으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그를 따라 어딘지도 모르는 곳을 한참 걸었다. 천천히 주위가 밝아지는 것 같더니 어느새 동이 트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말했다. 자, 돌아가자. 돌아가요? 안개는요? 봤잖아, 충분히. 못 봤는데?

그는 말없이 나를 쿨하우스까지 바래다주었고 그제서야 피곤에 잠이 오기 시작한 나도 별 딴지 없이 익숙한내 침대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약 세 시간 후 잠에서 깼을 때, 그가 말한 안개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삶이라는 게 그래.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나날이라도, 한 치 보다 더 가까이 가면 보이는 거야. 멀리서는 뿌얘서 안 보여도 내 옆의 친구는 보이는 짙은 안개 속 같은 거 말야. 인생이 안개 속에 있는데 굳이 찾으러 다닐 필요 없지. 라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그는.

오늘도 새벽에 나가면 그를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쩌면 오늘부터는 밤에 잠이 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호 키워드는 '삶, 안개, 도시'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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